호모러너스

여름을 가차없이 보내는 우중주(雨中走)와 함께 이제야 마라톤의 四季를 보다.

지구빵집 2018. 8. 2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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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며칠 동안 내리는 비가 차지한다. 오늘도 비는 오락가락한다. 무거운 안개가 되어 내리다가 세차게 퍼붓기를 반복한다. 비가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옷을 갈아입고 관문체육공원 운동장으로 간다. 핸드폰과 차키를 비닐 봉투에 넣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맨다. 모자는 야간에 달릴 때는 쓰지 않는데 비가 세차게 내릴 때 쓰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지만 내려 놓는다. 준비운동을 하며 몸을 푼다. 하늘은 어둡고, 운동장의 라이트는 4곳에 있는데 한 곳의 라이트만 밝게 비추고 있다. 


구름이 무겁게 깔리고 벌써 서울 쪽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가볍게 조깅을 하면서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조금씩 비가 온다. 멀리서 번개가 번쩍하는데 먼 거리라서 그런지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온종일 내린 비로 사람들은 거의 없고 2명이 트랙을 달리고 있다. 세 바퀴째 돌고 있는데 빗발이 굵어지며 본격적으로 쏟아질 채비를 한다.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서 거세게 쏟아져라'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세찬 비로 옷이 모두 젖었다. 운동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 더할나위 없이 상쾌했다. 위에서 내리거나 등 뒤에서 내리는 비는 별로 느낌이 없다. 조금 기울여 달리는 앞쪽에서 비를 맞거나 맞바람을 타고 내리는 비는 얼굴이나 온 몸이 따갑게 내리 꽃힌다. 머리에 맞는 비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수건을 머리에 묶었다. 바닥에 고인 빗물은 워낙 많이 쏟아지니 어느새 신발이 잠길 정도까지 트랙 레인 위에서 흐른다. 고인 물위를 달릴 때는 척, 척, 척 소리 말고는 모두 빗소리에 가려진다. 고인물이 달리는 러너에 의해 양 발에 양쪽으로 갈라진다. 홍해가 갈라지듯 러너는 바다위를 달려가는 모습이다. 


달릴수록 힘이 난다. 땀은 물과 섞여 떨어진다. 빨리 달리는 것 같은데도 비가 온 몸을 식혀주어 숨이 덜 차다. 오히려 물을 박 차고 나가니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비의 저항을 이겨내려 천천히 달리고 싶지만 의식할 수 없이 점점 과속이 되어 스피드가 붙어 있음을 나중에 알게된다. 


'미친놈' 소리를 듣는 누구든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오히려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미친놈아! 란 소리가 몇 번은 나와야 재미가 있다. 때때로 그런 미친듯한 몰입이 한 동안 없을 때가 있다. 물론 우리가 약간 꺽여 생활하는 시절도 필요하다. 


그릇이 커야 담기는 물이 많이진다. 연못이 깊어야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간다.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우리가 큰 그릇이 되고, 깊은 연못이 되고, 깊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의 책임이다. 태어난 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 우리가 이땅에 정해진 가족과 함께 존재보다 선행하는 관계를 받고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과 상황,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를 지옥으로 몰아 넣는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니다. 온전히 도로를 진행하는 우리차를 들이 받은 일은 우리 책임이 아니지만, 들이 받고 난 다음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권한이기도 하고, 우리의 자유이기도 하다. 


더 달려야 한다! 오늘 빗속을 달리고 나서야 모두를 보았다. 마라톤의 사계절을 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달리는 내내 우리를 둘러싼 계절을 모두 보았고, 하나하나의 계절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 그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지만 특별한 것들을 보았다.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늘 무언가 배우는 아이와 같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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