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몸 상태에 대한 두려움과 대회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긴장으로 걱정했지만 그만큼 즐겁게 달린 날이다. 42.195Km 온 구간을 가뿐하고 재미있게 달린 것은 마라톤을 시작하고 처음인 기분이 든다. 한강에 걸친 7개 다리들의 남단을 지나고, 한강 변을 달리고, 양재천을 되돌아 나오면서 바람과 구름을 가르며 달렸다. 아마도 이렇게 즐겁게 달릴 수 있는 때가 다시 올까 싶을 정도였다. 기록은 당연히 새로 썼다. 10월 28일 춘천마라톤을 대비한 경주라서 내심 4시간 10분이나 15분을 목표로 했다. 달리고 나니 4시간 22분을 기록했다. 도착지점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지나쳐 약 2킬로미터를 더 달렸으니 실제로 약 10분 정도가 시간이 더 지난 것이었으니 목표로 한 시간은 이루었다. 여하튼 소기의 목적을 기쁘게 달성했다.
잘 달린 날. 한 구간도 걷지 않고 힘도 들이지 않고 즐겁게 달렸다. 생애 최고 기록 4시간 22분 22초라는 선물도 받았다. 너무 기분을 내서 결승점 입구를 지나쳐 되돌아와 1500m를 더 달렸다. 너와 함께 가을이 물든다.
"모든 게 길이었고, 모든 곳을 달렸다. 오로지 달릴 뿐이었다."-손기정
5시, 5시 10분, 5시 20분에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니 6시 15분이었다. 손기정 평화 마라톤은 7시에 모여서 8시에 출발한다. 늦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준비한다. 평온함과 담담함을 유지하기로 한다. 밖은 어둡다. 거실도 어둡다. 주중에 있는 휴일이니 아내와 아들은 자고 있다. 자기 전에 필요한 물건들과 옷들은 준비는 다 해놓았다. 발뒤꿈치 부상이 걱정되어 두툼한 양말을 신는다. 계란부침과 밥 두 숟가락, 소고기 몇 점을 먹고 씻고 몸을 가볍게 하고 다녀온다고 인사하고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사람은 기도한다. 꼭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오겠다고. 보내는 사람은 기도한다. 문을 열고 나서는 사람이 꼭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늘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는 운전하고 갔지만, 오늘은 택시를 부른다.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해가 솟는다. 언제나 그렇듯 달리기에 좋은 날이다. 아니 달리기에 좋지 않은 날은 폭염이 오거나 매서운 강추위가 있는 날만 아니라면 언제든 좋다. 종합운동장 입구에 내려 걸어간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나 중반을 넘긴 사람들이나 모두 긴장한 모습이다. 간혹 10km를 달리는 젊은이들은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생기가 넘친다. 앞에 가는 게 누구냐?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이상하게 내 눈에는 여자의 모습이 멀리서도 금방 잘 보인다. 눈이 먼저 찾는지도 모른다.
"앞에 가고 있는 게 누구더라?" 남자가 말했다.
"엥, 어떻게 여기서 만나게 되냐? 상태는 어때? 준비는 잘했지?" 여자가 말했다.
"좋아. 걱정했더니 좋아졌어. 오늘 무리하지 말고 즐겁게 달려." 남자가 말했다.
"나를 찾는 방법은 알고 있겠지?" 여자가 말했다.
핸드폰으로 둘이 나오게 셀카를 찍었다. 사진 찍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티 내지 않는 여자는 "이렇게 찍어야지." 하면서 자세를 취한다. 여자의 행동은 언제 봐도 귀엽다. 여름 내내 폭염을 이기고 장거리 경주, 주중의 트랙과 언덕 달리기, 주말 남산 훈련까지 빠지지 않고 참가한 사람이 일이 밀리고, 아프기까지 해서 원하는 기록에 도전할 생각도 지워진 듯 보인다. 식식한 말투에 힘차게 걷는 여자는 아직 끝난 건 아니라는 표정을 짓는다. 서둘러 동료들이 있는 남자 탈의실 앞으로 간다.
잠실경기장에 도착해서 동료들을 만난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즐겁게 달리라고 격려한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달리기는 운동화에 반바지에 반소매 티면 된다. 오늘은 대회 날이라 상의를 모두 벗고 싱글렛 하나만 입는다. 보통 가볍고 시원하고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하나만 입거나 T-셔츠 위에 받쳐 입는 경기복을 싱글렛이라고 한다. 싱글렛 위에 배번(번호표)을 단다. 이젠 다른 사람이 달아주지 않아도 정확한 위치에 혼자 잘 달게 된다. 가방을 맡기고 약간 넓은 공간을 찾아 이동해서 전체 준비체조를 한다. 전체 참가 회원이 나오는 단체 사진을 찍는다.
모든 계절, 모든 날, 아침 저녁으로 달리는 모든 주로는 아름답다. 그 속을 달리는 사람들도 아름답다. 길과 사람이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자주 사진에 담지 못하고 달리기만 하는 일이 아깝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얼마 전부터 들었다. 요즘 양재천을 따라 달릴 때 코스모스, 여러 종류의 갈대들이 넘실거리고, 메리골드 꽃들이 환하게 핀 곳을 지나가는데 잠시 바라볼 틈도 없다. 하늘은 어떤가? 어느 곳에서 바라보는 멋진 하늘은 지나가는데 언뜻 스치고,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은 늘 사라지고 없었다.
"얘들아, 너희들 고집 센 거 잘 아는데 오늘은 잘 달려보자." 나의 발과 종아리, 무릎과 허벅지, 허리와 가슴을 만지고 올라와 머리를 만지고 어깨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오늘은 조금 힘들 거야.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 안에 달리기 위해서는 오늘 좀 열심히 달려 놓지 않으면 안 되거든. 장난이 아니야, 도움이 필요해." 혁명을 앞둔 근육들과 또렷한 정신은 나의 말에 잘 적응한다. 서서히 출발선으로 걸어가는 길이 가벼웠다. 준비운동을 성실하게 신경 써서 했더니 말랑말랑해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과 같이 출발선으로 간다. 가도 뒷부분 언저리 어디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그룹 지어 끝까지 달리기로 한 모양이다. 언제까지 함께 달릴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4시간 15분 안에 들어오자면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속도를 내야 한다. 매 킬로미터를 6분 5초에는 달려야 한다. 비교적 큰 대회 전문 사회자인 배동성 아나운서의 사회는 무심하게 멀리서 듣고 있어도 재미있다. 드디어 출발선에 정렬한다. 함성소리와 함께 무리 지어 사냥을 나가는 원시시대 수렵꾼처럼 달려나간다. '저 큰 매머드는 우리 차지야.'라고 거세게 달려나가는 러너들의 모습은 장관이다.
잠실 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을 출발해서 잠실대교 북단까지 달린다. 넓은 도로 한쪽을 모두 점거하고 달리는 데도 길은 좁다. 다리를 지날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 마치 구름을 밟고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바람은 불고 다리 위 넓은 도로는 막힘이 없어 이유 없이 좀 당당한 그런 기분이다. 6분 20초 시간으로 천천히 달려 북단 반환점을 돌아 다시 주경기장 스포츠 상가를 돌아 토끼굴로 나가 한강 변을 달리러 간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만 없다면 정말 좋은 길이지만 일요일 아침 일찍 라이딩을 즐기는 시민과 함께 주의해서 달려야 한다. 5개의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남단을 지나서 달리면 2차 반환점은 약 21km 지점인 구리암사대교에 있다.
언제쯤 약간 빠르게 속도를 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가능하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달린다. 15km가 넘어간다. 이제 슬슬 가야 하나 생각한다. 17km를 지난다. 이제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함께 무리 지어 달리는 동료들을 조금씩 멀리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결승선까지 매 킬로미터를 6분 안쪽에 달린다. 시계는 없다. 중간중간 옆의 러너에게 묻기도 하면서 달린다. 한강 변을 시원하게 달리면서 왼쪽으로 잠실 경기장을 두고 지나간다. 다시 홈그라운드인 영동 1교의 3차 반환점을 돌아와야 한다. 중간에 빠져나가는 길이 있으면 마음은 요동을 치기 마련이다.
'멀리 갈 것도 없어. 힘들잖니? 여기서 들어가면 편안해져.'하는 말이 귀에 맴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말이 허공에 떠서 사라진다.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곳을 지나 양재천으로 들어선다. 먼저 달린 동료들을 간간이 보며 혼자 시간도 잊은 채 달리기에 집중한다. 최대한 호흡을 편안하게 하고, 리듬을 타고 그저 다리가 내딛는 대로 달린다. 정확히 3시간 57분을 달리고 40km 지점에 도착한다. 마음이 놓였다. 이제 6분으로만 달려도 4시간 15분 이내에 완주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난다. 너무 기분을 냈나 보다. 한강 변으로 올라가자마자 오른쪽 잠실 주경기장으로 들어가는 토끼굴로 들어가 경기장의 피니시 라인으로 가야 하는데 입구를 지나쳐 한강 변을 계속 달려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가장 늦은 주자 3명을 보고 나서였다.
"주 경기장 입구가 어디예요?" 물었다. 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시 뒤돌아 달려간다. 바로 보이는 게 입구였다. 입구를 지나치는 그 짧은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되돌아보지만 이미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피니시를 통과하니 4시간 22분 22초였다. 잘 달렸다고 생각했다. 춘천마라톤 준비는 잘되고 있었다. '인내하고 견디고 절제하고 누르고 또 눌러서 해보자. 언제 해보겠냐?'하고 생각했다. 완주 후 한참이 지나서 함께 뛴 그룹이 들어왔다. 바람을 가르고 바람처럼 뛰는 여자의 마지막 완주를 사진에 담았다. 아름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을 때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처럼 스쳐 가듯 빠르게 흐르는 우리 삶에서 남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찮고 의미 없는 일들을 글로 남겨 저항하고 아름답고 영원하게 살리는 일이 글쓰기다. 그러니 나는 끝까지 쓰려고 한다. 다른 동료들의 완주 모습을 담고, 물을 실컷 마시고, 옷을 갈아입고 경기장을 둘러본다. 조명이 다 꺼졌다. 무대엔 아무도 없다.
올해 훈련을 시작한 3명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만든 새로운 일은 오래되고 묵은 기억을 꺼내 주섬주섬 닦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지를 치기도 하고 아름답게 포장해 다시 집어 넣는다. 지난 일이 아름다운 이유다. 처음 풀코스 완주를 공주백제마라톤에서 5시간 30분에 하고, 첫 춘천마라톤을 4시간 30분에 했다. 이분들은 너무 쉽게 완주를 한다. 기록도 대단히 좋다. 식당으로 이동해 뒷풀이를 하고 소감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큼 극적이고, 할 이야기도 많고, 오래 마음속에 지니고 갈 만한 일은 삶에서 드믄 일이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소중한 감동과 기쁨을 오래도록 가지고 살아가고, 함께 오랬동안 훈련을 같이 하기를 빌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見河-
공식기록 :
배번 40333 | 이름 | 개인기록 04:22:22.59 | 1차 기록 | 2차기록 01:53:13.55 | 3차 기록 03:26:01.66 |
이름 | 김봉조 |
배번 | 40333 |
코스 | 풀 |
개인기록 | 04:22:22.59 |
개인출발 | 08:01:37.70 |
개인도착 | 12:24:00.29 |
구간1 | 08:32:41.74 (00:31:04.04) |
구간2 | () |
구간3 | 09:54:51.25 (01:53:13.55) |
구간4 | 11:27:39.36 (03:26:01.66) |
풀 코스 FULL Course 지도
세상을 향한 시원한 퍼큐 되겠다! ^^
랩 시간 거리 페이스
1 0:06:32 1 6:33
2 0:06:25 1 6:23
3 0:06:24 1 6:23
4 0:06:20 1 6:18
5 0:06:10 1 6:09
6 0:06:16 1 6:14
7 0:05:56 1 5:55
8 0:06:07 1 6:05
9 0:06:02 1 6:01
10 0:06:07 1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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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06:04 1 6:02
13 0:06:28 1 6:26
14 0:06:25 1 6:24
15 0:06:21 1 6:20
16 0:06:06 1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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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