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건너면 다시 원래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말 사실이야.
원래대로 갈 수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마음이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인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문제도 아니고, 같이 자고 안 자고의 문제는 아니다. 마음을 얼마나 드러냈나 하는 정도의 문제다. 결코 드러내지 않았어야 했다. 그냥 우리가 함께 겪은 일은 스치듯 있었던 사소한 일들로 만들었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모를 정도로, 아니 알아도 흔한 친구 사이에 제법 일어날 법한 일들로 여기게 했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마음을 보이지 않고서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뢰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단원들에 있어서 신뢰는 서로의 관계를 가장 돈독하게 한다. 신뢰를 얻기에 섹스만큼 유용한 일은 없다.
남자는 섹스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남녀 관계에서 섹스가 무어 그리 중요하니?라는 말을 종종 했다. 의심스러운 말이었다. 마음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남자가 으레 할 만한 이야기였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참 바보 같았다. 주위에 누구라도 들었다면 알 수 있을 법한 말을 자기만 모르고 말했으니 참 불쌍하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게 두어야 한다. 시간이 무얼 하느냐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일을 해준다.
그의 발목은 실처럼 가늘었다. 아름다운 곡선이 무릎 아래 정강이에서 시작되어 발목을 지나 신발 속으로 들어간다. 불거져 나온 근육도 없고, 가는 뼈도 모두 근육 속에 들어 있어 튀어나오지 않았다. 저런 발목으로 먼 거리를 달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여자처럼 가는 발목은 본 적도, 만져 본일도 없었다. 오랫동안 남자는 한 번은 꼭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사과는 해야 했고, 사과는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의 사과는 철저히 그가 바라보는 입장에서 하는 사과였다. 그러니 누가 남자의 사과로 마음을 풀 수 있을까? 다음 날 남자는 문자를 했다.
"미안해. 버스로 올라올 때 내가 부담 준 일들 사과할게. 화났으면 풀어.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할게." 남자가 말했다.
"실수는 아니었어. 그게 어떻게 실수겠어. 마음이 그런 걸. 사과는 해야 네가 편할 것 같아서. 잘 지내." 남자는 다시 말했다.
남자는 사과를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발목을 만져 여자를 불쾌하게 한 자신의 행동을 그는 사과라는 형식을 빌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여자에게 부담을 준 일은 부담을 준 게 아니라 잘못한 일이다. 남자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머리 숙여 사과를 해도 모자란 일이다.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무슨 특혜도 아니고, 의무감에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조건 없이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명확한 인정이고,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남자는 여자가 편안한 관계로 구태여 고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방해해서 사과를 한다는 건지, 아니면 자기가 한 무례한 행동으로 여자가 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지 모호하게 말을 한다. 자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마음이 시킨 일이라서 마치 자기하고는 연관이 없다는 듯이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또 자기 마음을 드러낸다. 여자의 발목을 만진 일은 실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남자의 마음속에 가득 찼던 욕망이 어찌 불현듯 분위기에 휩쓸려 일어나는 실수로 인정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마음이 늘 그렇게 여자를 생각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남자는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늘 바보 같다. 잘 드러내지 않는 꺼내기 힘든 속마음을 드러냈으니 남자는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기가 한 일이라는 사실에서 빨리 빠져나오려 한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 마음이 시킨 일이라고 한다. 마음이 시킨 일이라서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마치 남의 일처럼 말을 한다.
"그래! 알았어. 너무 신경 쓰지 마! 신발은 아직."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신기한 현상을 목격한다. 모든 것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가 짊어진 끊어지지 않는 남자의 환상이나 탐닉으로 부르든 중독이라 부르든, 집요한 집착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는 안도감 일지 모른다. 며칠 심란했던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부단히 침착을 유지하던 남자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다시 어려운 일이지만 한결같아 지기로 했다. 우리 삶은 모두가 위장된 축복과 진흙 속의 연꽃으로 가득 차 있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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