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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일이 현실이 되면 우울해지는 일만 남은 건지.

지구빵집 2020. 5. 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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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일이 현실이 되면 우울해지는 일만 남은 건지

 

"
누구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우리도 또한 그들을 시험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의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가 또한 악으로 갚지 못하게 하소서.
"

 

  아침 일찍부터 설레었다. 1년 반 만에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는 자신이 맘에 들었다. 오전에 사업단에서 CARE-LAB 협동 로봇 작동 촬영이 있다. 물론 작동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가끔 외부에서 방문할 경우 투어 안내를 맡아서 하는 일이 주어졌다. 오후에는 내일 학생들이 들어야 할 온라인 강의를 녹화하는 일도 있다. 지난주에 부랴부랴 첫 강의를 강 교수의 도움으로 올리고 나서 이번에는 여유 있게 할 줄 알았더니 기대와는 다르다. 집을 나서 봉담-의왕 간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서수원, 안산으로 빠진다. 안산을 향해 달리다 보면 안산 시내가 나오고 외곽으로 약간 나가면 학교가 있다. 거리는 32km 정도고 시간은 막히지 않을 때 40분 정도가 걸린다. 

 

  학생들과 함께 실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온라인으로 하는 일도 고역이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강의는 제법 운치가 있다. 삶에서 깨달은 원리도 알려주고, 그럴싸한 감정 표현을 섞어가며, 제법 심오한 표정으로 아이들 표정도 살펴가며 이야기한다. 교과 진도는 마음먹기에 따라 통제가 되니 서두르거나 일부러 늦출 필요도 없다. 매 강의시간 정해진 일정을 채우는 일은 한 학기만 잘 끝내면 그다음부터는 쉬운 일이 된다. 아이들 없이 녹화하는 온라인 강의는 정신없이 진도가 빨라지고, 학생들이 이해하는 정도를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코로나의 습격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바지를 향해가는 봄 날은 이렇게 지나간다.

 

  얼마나 바라던 캠퍼스 생활인지 모른다. 남자는 늘 학교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꽃은 느리게 피어 오래가고, 단풍은 가장 먼저 들기 시작해 마찬가지로 가장 늦게 지는 곳이다. 봄이 되어 가능성으로 충만한 아이들을 보는 일은 오히려 나이 든 사람에게 전염되어 충분히 활기찬 날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건물 사이는 한 참을 걷기에 충분할 정도로 멀어 저절로 산책이 하루 종일 가능한 곳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든 변화와 앞으로 변할 모습이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곳이다. 학생들이 무리 지어 다니면 재잘대는 소리에 주위가 시끌벅적하고, 외롭게 혼자 걸어가는 이에게선 사색의 향기가 물씬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2020년에는 2월이 29일로 일 년 366일이 되고, 음력으로 4월이 두 번(윤달)이라서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한 날씨가 이어진다. 오늘은 바람이 다소 약하고 햇살은 따뜻하다. 캠퍼스에 있는 시간은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 이별을 해도 견딜만하고, 사고가 일어나도 웃음이 나고,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이상하게 미소를 짓게 하는 기억이 된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1 공학관으로 들어와 5 공학관으로 가고, 다시 4 공학관 연구실에 터를 잡고, 5 공학관으로 가서 도움을 받고, 다시 1 공학관으로 가서 녹화를 하고 노을을 바라보며 4 공학관 연구실로 왔다. 정오를 지나면서 햇살이 강하게 들어온다. 차단 커튼이 있지만 내리지 않는다. 가까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내려 사무실로 가져와 책을 읽기도 하고 강의자료를 만들고 정리하고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사업단 행정실 직원은 갓 들어온 신입에게 신경을 쓴다. 신입이지만 강의를 맡았고 사업단에 필요한 여러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직원에게 필요한 온라인 계정을 터야 하고, 임용 과정에 필요한 준비 서류를 꼼꼼히 알려준다. 오늘은 영락없이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날이라 남자가 지낼 사무실을 안내해준다. 노트북은 주문했으나 시절이 시절인지라 받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서 사무실 노트북을 빌려준다. 사무실 직원이 쓰던 노트북과 가방과 마우스는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다. 사무실을 안내해주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준다. 큰 달력, 탁상달력까지 포함해 깨알같이 준비해 준 문구용품이 19가지나 된다. 

 

  남자는 갑자기 우울해진다. 많이 그리워하고 원하던 것이 현실이 되면 이렇게 우울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욕망은 그래서 하나도 가치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부단히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일은 한순간도 우울함을 가져오지 않는다. 성장하는 일은 스스로를 살피고 자신의 내면에 다다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쓸쓸한 감정은 욕망이 훨씬 크고 강할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깊이가 깊어진다. 한편으로 자신을 구박하는 마음이 인다. 기껏 스스로 일어서고 인내하며 버티는가 했더니 안락한 컴포트 존으로 직진하는 자신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거나 좋지 않거나 둘 중 하나고 기회를 마련하는 일도 온전히 자신의 일이다.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은 예쁘고, 기쁜 일만 생각해야 한다. 괜히 오지도 않을 죽음이나 깨달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생각만 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내일은 학교로 오지 않을 생각으로 햇살이 들어오지 못하게 커튼을 친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햇빛은 생명을 유지하고 번식하며 뻗어나가는 에너지를 주지만, 살아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햇살은 모든 것에서 색깔을 빼고 사물들이 가진 생생한 무생물의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햇빛이 사무실로 들지 못하게 커튼을 친다.

 

 

5공학관 앞에 늦은 왕겹벚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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