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계약 The Modern Covenant
근대성은 일종의 계약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태어나는 날 이 계약에 서명하고, 죽는 날까지 이 계약의 통제를 받는다. 이 계약을 취소하거나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계약은 우리가 먹는 것, 우리의 직업, 우리의 꿈을 주무르고, 우리가 사는 곳, 사랑하는 사람, 죽는 방식을 결정한다.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는 인간이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 안에서 한 역할을 맡는다고 믿었다. 그 계획은 전능한 신 또는 영구불변의 자연법칙이 짠 것이므로 인류가 그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장대한 계획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인간의 힘을 제약하기도 했다. 전근대 사람들은 힘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삶이 의미를 얻는다고 믿었다. 근대 이후의 문화는 그런 장대한 우주적 계획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힘을 얻는 대가로 인간은 의미를 포기했다. 이 장은 근대에 시작된 힘의 추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을 계속 추구하게 하는 동력은 과학의 진보와 경제 성장의 동맹이다. 근대 이후 사회는 경제성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확고한 믿음 위에 서 있다. 기도, 선행, 명상이 위안과 용기를 줄 수는 있지만, 기아, 역병, 전쟁 같은 문제들은 성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이 기존 교의를 하나의 간단한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문제가 있으면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기아와 역병을 극복한 공의 대부분은 성장을 신봉하는 자본주의에 돌아가야 한다. 심지어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에 폭력을 줄이고 관용과 협력을 증가시킨 점에 대해서도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경제를 네 이윤이 곧 내 손실인 제로섬 게임이 아닌, 네 이윤이 곧 내 이윤인 윈윈 상황으로 보게 함으로써 세계 화합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런 호혜주의적 접근 방식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쪽 뺨을 내어주라는 수백 년간의 기독교 설교보다 세계 화합에 훨씬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과학은 새로운 에너지원, 새로운 종류의 원재료, 더 나은 기계장치, 새로운 생산방법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 결과 현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와 원재료를 거머쥐었고, 생산량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컴퓨터 같은 발명품들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출했다. 우리는 20년 뒤를 내다보며 그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나노기술, 유전공학, 인공지능이 다시 한번 생산 혁명을 일으켜, 영원히 팽창하는 초대형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들을 개척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때리기는 요즘 지식인 세계에서 중요한 의제이다.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단점들이 종말의 파국을 몰고 오기 전에 그 단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 적어도 미래에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진보와 성장이 생태계를 파괴할 경우 사피엔스는 호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생태계 붕괴는 경제 파탄, 정치 불안, 삶의 척도 하락을 초래해 결국 인간 문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근대 계약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힘을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졌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뭘까?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할 것을 기대한다. 인간이 이 요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 요구를 따랐다면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할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협력적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는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 -호모 데우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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