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형 에세이

지구빵집 2020. 8. 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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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형 에세이 

 

책을 쓰는 일이 쉬운 일이 되었다. 누구나 자기가 느낀 것과 사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쓰고,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도 쓰고, 환자도 쓰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쓰고, 직업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도 쓰고 뚱뚱한 사람도 쓴다. 

 

지식의 양이 증가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2030년이 되면 3일마다 인류 전체 지식이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지식을 글로 써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참여하는 작가가 늘어나면서 책이 나오는 양이 증가한다. 더더욱 좋은 책을 선택해서 읽기가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책을 읽는 시간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좋은 책을 반복적으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그렇게 읽는다. 금강경,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용기, 자기계발서, 시집, 월든, 전쟁론, 손자병법, 고전 등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들을 가까이 한다.   

 

글을 쓰는 일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라서 더 많은 사람이 쓰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일은 좋은 일이다. 쓴 글을 읽는 일은 쓰는 일과 다른 문제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일도 한정된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따지고 보면 무엇인가 배우고 교훈을 얻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독서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아서, 활자 자체를 보고 싶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무엇이든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선택한 책을 읽는 시간을 그저 즐겁게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책에 대해 왈가왈부 할 이유가 없다. 재미없는 책은 읽지 않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사 온 책을 읽고 있다. 남자가 읽는 책은 대부분 자기 계발서에 전공책, 무미건조한 소설처럼 딱딱하고 재미가 없지만 여자가 사 온 책은 독특하고 재미있다. 가끔은 서 너 권씩 사 오는 책이 반갑기도 하다. 반드시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있는 책이 한권쯤은 있을 테니.

 

***

 

저자가 26살 연애를 하던 시절에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며, 언젠가 정답을 찾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결국 저자의 도발적인 몸에 대한 불만을 가진 여자와 헤어진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 상대방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 

 

나름 인권 감수성 교육을 받고 자랐을 세대가 타인의 몸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을, 주제넘은 말이 실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의학적 차원이든 미학적 차원이든 정상 체중이라는 게 존재하고 날씬한 게 미의 디폴트인 사회에서 살이 쪘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하고도 엄격한 한국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에 비만인은 직간접적으로 매일 정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폭력적인 시선에 노출된 처지인 것이다. p.41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자기 관리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 또한 내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며 모든 관계에서 영원을 기약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가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덧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매일 다짐하는 못난 30대가 되어 있었다. p.71 

 

밥벌이는 참 더럽고 치사하지만, 인간에게, 모든 생명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바위를 짊어진 시지포스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거창한 꿈과 목표, 희망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떤 목표를 위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의 연속이라 여기기로 했다.

 

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고 하루가 또 하루를 버티게 만들기도 한다. 설사 오늘 밤도 굶고 자지는 못할지언정, 그런다고 해서 나 자신을 가혹하게 뭐라고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려 한다. 다만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하루만큼 온전히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p.257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형 에세이, 일상밀착형 호러 서스팬스 다이어트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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