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작은 누나에게 받은 것들

지구빵집 2021. 1. 11. 10:23
반응형

 

 

거리두기 단계가 지겹도록 연장, 또 연장 중이다. 몇 주 동안 토요일 정모가 열리지 않아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웬만큼 춥지 않으면 일주일에 세 번은 달려야 하는 데 지난주는 한 번 밖에 달리지 못했다. 주말 아침은 느긋하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달리러 나가지 않으면 특별히 할 일은 없다. 다음 일주일 동안 먹을 것을 준비하는 장보는 일을 끝내면 마무리된다. 달리기 모임에서 봉사하라고 맡은 자리가 괜히 별 일은 아닌데 부담으로 느낄 때가 있다. 어떻게 결정이 되고 어떤 일을 할 건지는 대강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는 일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잘 못하는 일이다. 무엇인가 어깨에 올려지면 잘하던 일도 하지 않는다. 굳이 드러내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주도적으로 한다든가 앞서 지휘하는 일을 싫어한다. 원래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은 보는 시야가 넓어서 작은 부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다. 필사적인 일을 과감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방식에 서툴다. 완벽한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니라 어설픈 사람들이 모여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남자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시 성장하기를 원한다. 얼마나 더 잘 배우고 일을 잘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길을 만들어 나가는지 보기로 한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이 평가하는 말을 듣게 된다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하게 두고, 나는 나의 일을 하러 간다.' 

 

트위터에서 이런 이야기를 보았다.

 

"남동생의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내 남동생의 좋은 면들은 다 누나의 교육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사실 그 여자 친구는 남동생이 아닌 누나를 좋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여자에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좋아한 게 아니라 작은 누나를 좋아한 거야."

 

여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글씨를 약간 예쁘게 잘 쓰지만 타이핑하기를 더 좋아하는 남자는 작은 누나에게서 있으면 좋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은 장점이라고 말해도 좋은 거의 전부를 배웠다. 큰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작은 누나와는 잘 통했다. 남자가 평생을 가지고 산다 해도 조금도 바래지거나 불편하지 않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누나가 가르쳐 준 것이 보기에도 좋았지만, 남자가 가지고 있는 좋은 태도와 배려 같은 것들이 조금은 묻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나가 있는 남자는 여자에게 일찍 눈을 뜬다. 많은 여자를 만나거나 여자를 부담 없이 대한다는 게 아니라 여자의 몸이라든가 행동을 알아보는 면에서 그렇다. 배운 것들을 아주 잘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적당한 수준으로 10점이 만점이라면 6,7 점은 받는 수준이 적당하다. 

 

중학교에 막 들어가면 펜글씨를 배운다. 한글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배운 게 전부였고, 누나는 영어를 가르쳤다. 펜대에 펜촉을 꼽아 잉크를 찍어서 쓰는 도구를 딥펜(dip pen)이라고 하는 데 잉크도 금방 떨어지고 종이도 잘 긁혔다. 영어 기본 문법을 배웠고, 영어 인쇄체와 필기체 쓰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 작은 누나는 강압적으로 시키지는 않았다. 누나는 워낙 반듯하고 모범생이었기에 일상 하나하나가 남자에게는 부러운 일이었다. 실내화를 하얗게 빨고, 교복에 파란 잉크로 아주 희게 보이게 만드는 일, 가방을 싸고 복습과 예습을 하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영어 수학을 잘하는 학생은 국어를 잘한다. 우리말을 이해하는 실력이 좋다면 다른 과목도 잘하기 쉽다. 부모님은 매년 세계 문학전집, 한국 현대문학 전집과 같은 한 질로 꽤 비싼 책을 사주셨다. 물론 내가 읽으라고가 아니라 누나 둘을 위해서다. 남자가 지닌 실증적 낭만주의-그래도 결국 사랑은 현실을 극복하고 결국 완성에 다다른다는-나 자잘한 글쓰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것들까지 누나가 그때 심어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내와 나에게 자식을 키우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들도 부모의 아들로 사는 삶이 처음이고 우리 같은 부모와 사는 일도 처음이다. 무엇보다 서툴고 지나고 나면 빠뜨리고 지나가는 일이 한가득이다.

 

"아들에게는 내가 받은 것들을 하나도 주지 못했네? 와, 뭐하고 살았던 거지?" 남자가 말했다. 바쁘게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나 만족하지 못하는 삶에 치여서 아들에게 줄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고 느낀다. 평화를 얻기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은근히 지금 나와 아들을 씹고 있는 거야?" 여자가 말했다. 피해의식이란 별거 아니다. 무엇을 듣든지 자기가 이유 없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일어난 일을 자기 탓이라고 몰아가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인지하는 상태다. 말이 길어지지 않고 대화는 공격과 수비 모드로 전환된다. 그런 경우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대화는 자주 끊긴다. 무기를 들기 전에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창을 든 여자와 방패를 든 남자에게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법이다. 남자의 말은 단지 자신이 받은 것을 아들에게는 주지 못했다는 말이고, 그 말 뒤에는 후회라든가 자책 같은 느낌이 나오는 게 순서다. 여자는 자신이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에 대처하는 방법이 취약하다. 사람이라면 대부분 허약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우정은 사랑보다 더 비극적이다.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