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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 말테의 수기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지구빵집 2022. 5. 1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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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 말테의 수기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백정승 옮김, 동서문화사, 2014)

 

중요한 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사는 것이 중요하다. p.11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보이는 모든 것이 내 마음속 깊이 가라앉는다. 그것은 여느 때와는 달리 일정한 깊이에서 멈추지 않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간다. 나에게는 내가 모르는 내면이 있다. 모든 것이 지금 그곳으로 흘러들어 간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전혀 모른다.... p.12-13

 

이제 앞으로는 편지도 쓰지 않겠다.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을 남에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이 되고 나면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다. 옛날의 나하고는 다르다. 나는 이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미지의 사람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편지를 쓸 수 있겠는가. p.12-13

 

불쌍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그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실이 툭 끊어지듯 생각이 그대로 중단되어 버릴 수 있으니. p.14

 

해산할 날이 가까워진 여인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는 얼마나 슬픈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가녀린 두 손을 살짝 올려놓은 그 부푼 배 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들어 있으니, 하나는 아기이고 또 하나는 '죽음'이다. 그녀의 정결한 얼굴에 함초롬한 미소가 짓게 번지는 것은, 이따금 그 두 개의 열매가 자라고 있음을 느끼는 희미한 안도 때문이 아닐까?... p20-21

 

그러나 나는 지금 외톨이이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트렁크 하나와 책을 담은 상자 하나만 들고 아무런 호기심도 없이 세상을 떠돌 뿐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삶이란 말인가. 집도 없고, 물려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다. 그저 추억만이 얼마간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슨 추억이란 말인가? 아직 유년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이에게 추억은 땅속에 묻혀 있는 것과 같다. 추억을 되살리려면 사람은 먼저 나이를 먹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 것이 좋다. p.21-24

 

나는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무언가 나 자신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는 스물여덟 살이다. 그런데 스물여덟 살이 되도록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 어린 나이에 쓴 시는 대단치가 못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일생을 걸고, 되도록이면 70년이나 80년쯤 걸려서 벌꿀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겨우 마지막에 가서야 가까스로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는 사실 경험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해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수많은 짐승과 새를 알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을 느끼고, 아침에 피어나는 조그만 풀꽃의 고개 숙인 수줍은 몸짓을 알아야 한다. 미지의 나라로 가는 길과 예기치 않았던 만남,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 이별, 아직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 자식에게 기쁨을 주려고 했건만, 자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모진 상처를 주고 만 부모(다른 아이 같았으면 틀림없이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여러모로 깊고 중대한 변화와 함께 야릇한 발작으로 시작되는 소년 시절의 병, 조용하고 적막한 방에서 보낸 나날, 바닷가의 아침, 바다 그 자체의 모습, 그곳의 바다와 이곳의 바다,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함께 덧없이 사라진 여행지의 밤들. 시인은 그런 것들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저 그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뿐이라면 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하룻밤 하룻밤이 전날 밤과 조금도 닮지 않은 숱한 사랑의 밤들과 산고(産苦)의 외침. 하얀 옷 속에서 깊이 잠든 채 오로지 육체의 회복을 기다리는 산모. 시인은 그런 것들을 추억으로 지녀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머리맡을 지켜보아야 하고, 열어둔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는 방에서 죽은 이 곁을 지키며 밤을 보내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추억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또한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추억이 많이 쌓인 다음에는 그것을 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추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표정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더 이상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되어야 비로소, 그 추억의 한 복판, 추억의 그늘에서 불현듯 한 편의 시를 이루는 최초의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p.22-24

 

나는 모든 인생 속에, 그리고 모든 문학 속에 있는 이 제삼자, 그러나 사실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제삼자라는 '환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언제나, 가장 깊은 비밀로부터 인간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심술궂게 왜곡하는 자연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가는 것은 그 제삼자가 아니라, 다만 이 두 사람이다. 이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작품은 단 한 편도 쓰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고뇌하고 행동하며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른다. p.22-24

 

p.24

 

사람들이 지금까지 정말 진실한 것,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발명과 진보가 있었음에도, 문화와 종교 그리고 성현의 지혜가 있었음에도, 인간이 다만 삶의 표면에만 머물러 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의 모든 역사가 잘못 이해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죽어가는 낯선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고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항상 군중에 대해서만 말해 왔기 때문에 과거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런 어리석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태어나기 전의 일을 하나하나 되짚어서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존재가 지나간 모든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또한 이를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런저런 견해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모든 사람이 있지도 않은 과거를 확실하게 안다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오히려 모든 현실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고, 그의 현실 생활은 무엇과도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빈 방의 시계처럼 그저 지나가 버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어린 소녀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여자들' '아이들' '소년들' 같은 단어를 말하면서, 평생 단 한 번도 (그의 교양 수준과는 관계없이) 이 단어들이 복수가 아니라 다만 셀 수 없이 많은 단수들을 뜻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말하는 '신'이 세상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아니,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불안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늘 놓쳐버리는 일을 되잡아 시작해야 한다. 설령 그가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p.24

 

할아버지에겐 시간의 흐름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겐 죽음도 아주 하찮은 우연일 뿐이었고, 그것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다. 한번 그의 기억 속에 머문 사람은 그대로 계속 실재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가 자기 편리할 대로 미래를 마치 현재인 것처럼 여겼다고 얘기했다. p.30

 

열람실에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조금도 그런 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모두들 책 속에 파묻혀 있다. 그들은 이따금 책갈피 속에서 움직이곤 하는데 이것은 마치 사람이 잠을 자며 두 개의 꿈 사이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과 같다. 책 읽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마음이 즐겁다. 어째서 인간은 늘 지금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일까? p.34

 

진정한 시인은 3백 명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나는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아마 가장 가난하리라. 게다가 외국에서 왔다. 그런 내가 한 시인을 품고 있다! 나는 가난하다. 날마다 입고 다니는 옷은 이미 해지기 시작했고 신고 다니는 신발도 구멍이 났다.... 이대로 어딘가 큰 길가의 찻집에 들어가서 당당하게 과자가 담긴 커다란 접시에 손을 뻗는다 한들 어떠하랴. 나를 가로막거나 욕하면서 내쫓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35-36

 

하지만 내겐 수염을 다듬지 않을 권리조차 없다는 건가? 바쁜 사람들은 대개 수염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다고 해서 그를 부랑자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확실히 부랑자는 부랑자다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거지와는 다르다. 이 둘은 뚜렷이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인생의 떨거지, 운명의 신이 씹다 뱉어버린 열매껍질과 같은 존재이다. p.35-36

 

그리하여 나는 책 사이에 안전하게 숨는다. 아예 죽은 살마처럼 바깥세상에 등을 돌린 채. p.37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의 고요한 방 안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고요한 가구들에 둘러싸여, 창밖 초록빛 뜰에서 들려오는 박새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며, 한가로이 먼 곳의 마을 시계탑을 바라보는 생활은 얼마나 복된가! 가만히 앉아 벽에 비치는 따뜻한 오후 햇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 과거의 소녀들에 대한 온갖 추억을 간직한 채 그렇게 한 사람의 시인이 된다는 것. 이 세상 어딘가에 나만의 집이 있었다면,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하고 소박한 시골집. 그런 집의 방 한 켠이면 충분하리라(다만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지붕 밑 방이면 좋겠다). 방 안엔 나의 오래된 물건들, 가족사진과 책, 팔걸이의자 하나와 꽃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동무가 되어줄 개 몇 마리와 자갈길을 걸을 때 쓸 튼튼한 지팡이 하나. 그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그래, 공책, 노란빛이 은은히 도는 상아색 가죽으로 장정된, 옛날 꽃무늬 면지가 들어간 공책이 한 권 있으면 좋겠다. 나는 거기다 글을 쓸 것이다. 내가 가진 온갖 생각과 기억을 다 적으려면 아주 긴 글이 될 테지. 

 

그러나 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내 오래된 가구들은 따로 둘 데가 없어 헛간에서 썩고 있다. 그렇다, 나로 말하자면, 몸을 가릴 지붕 하나 없다. 빗물이 사정없이 내 눈에 스며든다.

 

나는 센 강변 거리의 작은 가게 앞을 자주 지나간다. 골동품, 헌책, 동판화 등을 파는 가게들이 진열장 가득 물걸들을 늘어놓고 있다. 아무도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얼핏 봐서는 장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무심한 얼굴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내일에 대한 걱정도 없고 성공해 보겠다고 안달하는 마음도 없다. 그들 발치엔 개 한 마리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누워 있다. 아니면 고양이가 책 선반을 따라 마치 책등의 글자를 지우려는 것처럼 옆구리를 비비며 걷는다. 그런 고양이의 존재는 가게 안의 고요를 더욱 깊게 만든다.

 

그런 생활도 있다. 나는 그 가게를 통째로 사고 싶다. 개를 한 마리 데리고 그런 가게에서 20년쯤 살아보고 싶다. 문득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크게 소리 내어 말해 본다. "아무 일도 아냐."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한 번 더. "아무 일도 아냐." 효과가 있나? p.38-39

 

나는 단번에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적막하고 메마른 경치는 대번에 내 마음속에 뛰어들어왔다. 그것은 차라리 오롯한 내 마음의 내적인 풍경일지도 몰랐다. 그런 곳을 걸어오면 몹시 피곤해졌다. p.41

 

그렇다,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등을 돌리려 하는 자기 자신을 의식했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싸우고 있다. 내 가슴은 이미 찢겨나가 저 너머 허공에 매달려 있을지라도, 나는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나는 저항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지만 내가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서도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세상과 분리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만약 내 공포가 그렇게 크지 않다면, 모든 걸 다르게 바라봄으로써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두렵다.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섭다. 내겐 현실세계가 낯설다. 너무나 낯설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 세계조차도 말이다. 이런 내가 또 다른 낯선 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친숙한 세계에 남고 싶다. 바뀐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면, 하다못해 개들의 세상에서라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개들의 세상이라면 어느 정도는 우리의 세상과 비슷할 테니까.

 

아직은 내가 그 모든 것에 대해 쓰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언젠가 내 손이 내게서 멀어질 그날이 오면,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말을 쓰게 될 것이다. 나의 생각이 전혀 다른 의미로 옮겨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에도, 나는 내가 어떤 위대한 존재 앞에 선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제 써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인상을 글로 옮겨야 한다. 그 글을 내가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걸음만 더 내디딜 수 있다면, 나의 이 절망적인 고통은 곧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없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다. 나는 이미 산산조각 나버린 파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거라 믿어왔다. 지금 내 앞에는 그동안 매일 밤 기도하면서 이런저런 책들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손수 베껴 적어 둔 공책이 있다. 내 손으로 직접 써두면 마치 그것들이 나 자신의 말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는 그것들을 다시 한번 써보려고 한다. 이편이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런 만큼 한 단어 한 단어가 좀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불만스럽지만, 이렇게 한밤의 고독과 적막 속에 혼자 있으면, 나는 기운을 되찾아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되살리고 싶어 진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가 찬미한 사람들의 영혼이여. 내 마음이 강해지도록 도와주오, 내게 힘을 주오, 이 세상의 모든 거짓과 더러운 악취로부터 나를 멀리 떼어 놓아주오. 그리고 그대, 나의 주, 나의 하느님이시여! 저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제 손으로 아름다운 시 몇 줄을 쓸 수 있게 해 주소서. 적어도 제가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형편없는 인간이 아님을, 제가 경멸하는 사람들보다 못하지 않은 인간임을 저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는 몇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쓰게 해 주소서(보들레르의 시 <밤의 한때에>에서 인용)". p.44-46

 

의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설명하기 매우 어려웠다. p.46

 

운명이란 참으로 기묘한 행로를 더듬어가는 법이다. p.49

 

어린 시절 열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나에게 처음으로 바닥 모를 깊은 공포를 가르쳐 주었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터무니없이 큰 어떤 것. 사람들이 내 침대에 둘러서서 맥을 짚어보며 무엇이 그렇게 무서우냐고 물으면 나는 그때마다 '그 커다란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이윽고 의사가 불려 와, 내 머리맡에 와서 뭔가 말을 걸면 나는 "'그 커다란 것'을 쫓아내 주세요, 그것이 무서워요"말하곤 했다. 그러나 의사도 소용없었다. 그것을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고, 어린아이를 달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끝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건지, 어디에 내가 잘 집이 있는지, 이렇게 무작정 걸어 다니는 것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나의 기이한 병이 재발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병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그들이 다른 온갖 질병을 이상하게 과장하고 싶어 하는 것과 신기하게도 대조적이다. 이 병에는 특별한 고유 증상이 없다. 병에 걸린 사람의 성질에 따라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이미 먼 옛날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내면의 깊은 두려움을, 마치 최면술사처럼 확실하게 끄집어내어 그 사람의 바로 눈앞에 들이댄다. 이를테면 학창 시절에 못된 짓을 저질렀던 사람이 과거와 똑같이, 꼬마 아이의 서툴고 거친 손에나 어울릴 법한 그 부끄러운 짓을 어느 순간 다시 저지르려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또는 예전에 극복했다 여겼던 질병이나 버릇이 도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있었던 고개를 돌릴 때의 특이한 버릇 같은 것이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옛날의 것들과 함께, 한번 바닷속에 빠진 물건에는 젖은 해초가 뒤엉켜 따라오듯이, 반드시 애매하게 뒤엉킨 기억의 찌꺼기가 딸려 나오는 법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생활의 단편이 심연에서 솟아올라 실제 과거의 일들과 뒤섞인다. 그리하여 그것이 이제까지 확실하다고 믿었던 과거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풍경은 푹 쉬고 난 뒤의 정신처럼 새로운 힘으로 넘치는 반면, 평소에 익숙했던 과거는 너무 자주 떠올린 까닭에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p.50-52

 

나는 어린 시절을 갈구했고, 이제 그것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힘겹게 느껴졌다. 이만큼 나이가 들었음에도 달라진 건 없다. p.53

 

때로는 아무리 끔찍한 것이었다 해도 그동안 현실이라 믿어왔던 모든 것을 내가 이토록 쉽게 포기해 버렸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답니다.

 

아, 내 현실의 일부분만이라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런 현실이 과연 존재할까요? 아니, 그럴 순 없습니다.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희생하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한 바람일 것입니다. p.58-59

 

빈 공간을 더욱 공허하게 만드는 빛을 경계하라. p.59

 

어머니.... 아이에게로 서둘러 가기 위해서는 그 어떤 장애라도 뛰어넘을 듯이, 등 뒤로는 영원한 사랑의 비행의 궤적을 그리며. p.60

 

명성은 아직 형성되고 있는 인간을 공공연하게 파괴합니다....

 

젊은 영혼이여,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당신의 내면에 차오르는, 당신을 전율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모른다는 사실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을 평가절하하는 누군가가 당신을 반대한다면, 또는 당신과 교제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당신의 사상을 문제 삼아 당신을 매장시키려 든다면ㅡ이런 눈에 보이는 위협은 당신을 내적으로 강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뒤에 찾아올 명성이라는 음험한 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성은 당신을 온 세상에 흩뿌려 놓음으로써 당신을 무미건조한 대상으로 바꿔놓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당신에 대해 말해달라 하지 마십시오. 찬사가 아닌 혹평을 바라는 것조차도 안 됩니다.... 당신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름을 택하십시오. 그 이름으로, 한밤에 신이 당신을 부를 수 있도록. 그 이름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고이 간직하십시오. p.63-64

 

의지의 무게 감소에 따른 미묘한 낙차, 한 방울의 갈망 속에 깃든 우울의 크기.... 이 모든 것이 당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온 삶, 우리 내면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삶, 우리 내면으로 너무나 깊숙이 파고들어 가서 더 이상 우리가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멀어진 과거의 삶은 바로 이러한 미세한 변화들 속에서 재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65

 

그토록 완고했던 당신이 인생의 막바지에 카페 창가를 떠나려 하지 않았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되면 지금의 관찰을 써먹을 때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p.66

 

그러나 잉게보르크 이야기를 할 때면 어머니는 완전히 기운이 되살아났다. 목소리도 훨씬 커졌고 잉게보르크의 웃음을 떠올리며 웃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잉게보르크가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저절로 눈앞에 떠올랐다. "그 애는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 주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까지도 무척 행복해하셨단다. 그런데 그 애가 약간 아픈 것 같았는데, 의사가 곧 죽을 거라는 진단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숨겨 버렸던 거야. 어느 날 그 애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자기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면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더구나. '그렇게 조심하실 필요 없어요.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요. 걱정 마세요. 이렇게 돼서 좋아요.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렴. 그 애는 이렇게 말했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던 그 애가... 말테야, 네가 커서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나중에 더 크면 돌이켜 보렴, 그러면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가올지도 모르지. 그런 일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 좋겠다."...

 

아무튼 시작이 없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것만 확실하게 파악한다면 이미 반도 넘게 알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니? 오, 말테야, 우린 모두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어. 다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일에 쫓겨서 제대로 주의를 기울일 여력이 없는 거야. 그래서 별똥별이 떨어져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소원을 빌지도 않지. 하지만 말테야, 너는 마음에 소원을 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원빌기를 포기하면 안 돼. 소원이라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진정한 소원은 평생을 가기도 한단다. 평생을 품어도 충분치 않을 그런 소원이 있는 거야." p.67-68

 

"읽어도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말테야,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얘기뿐이야." 어머니는 세상 모든 일들이 죄다 난해하고 복잡한 것뿐이라며 혼자 단정하고 있었다. "우리 인생에 인생 초보자를 위한 학교 같은 건 없어. 세상은 우리에게 늘 다짜고짜 가장 어려운 것만 내밀거든." p.69

 

하지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표현하는 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어린아이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갑자기 나는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금방이라도 그런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았고, 그래서 그 말을 해야 한다면 그보다 무서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조금 전 책상 밑에서 일어났던 일을 재현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내 식대로 재구성하여 이야기해야 한다니, 더욱이 그것을 내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니. 맙소사, 내겐 도저히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인생이란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정해진 일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들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것임을 막연히 예감했다. 조금씩 어떤 서글프고 무거운 자긍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린 나는 내면에 비밀을 가득 품은 채 침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인간을 상상했다. 그러자 불현듯 어른들에게 크나큰 연민을 느꼈다. p.73-74

 

P75~6 병에 걸려 누워 있는 오후는 한없이 길고 지루하다.... 나중에 다시 기력이 돌아오면 높이 올린 베개에 몸을 기대앉아, 장난감 병정을 가지고 놀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기울어진 침실용 탁자 위에서 장난감 병정은 쉽게 쓰러지고, 병정 하나가 쓰러지면 일렬로 선 나머지들도 차례대로 쓰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부터 같은 일을 되풀이하기에는 아직 힘이 모자라고, 그러면 갑자기 그런 장난감까지 싫증이 나서 금방 저쪽으로 치워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저 얌전하게 앉아 아무것도 없는 이불 위에 다시 두 손을 올려놓고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때의 소피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어머니는 함께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 말에 말테인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소피는 죽은 것으로 치자고 말하면 나는 끝까지 반대하면서, 확실히 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p.75-76

 

그때를 돌아보면, 어렸을 때의 내가 그 열병에 들뜬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기 바라는 친밀한 공동체의 세계로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새삼 놀라울 때가 있다.... 이해를 하고 나면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혼자 놀다 보면, 내 경우가 늘 그랬는데, 이 모든 악의 없는 세상을 넘어서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들어설 때도 있었다. p.77

 

나는 마침내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들을 향해 팔을 쳐들며 애원했다.

 

"제발 날 좀 꺼내 줘." 그러나 그들은 듣지 못했다. 나의 애원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p.81-82

 

어릴 때부터 조용히 방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먼 뒷날 절망에 빠지는 데 이를 때까지 신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숱한 시기를 지나왔다. 그 연결고리는 그 형태가 갖춰지기가 무섭게 산산이 부서질 정도로 격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음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에는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물론 홀로 그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때 이미 어머니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고 난 뒤였다. p.83

 

두 사람은 곧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어머니에 대한 얘기인 듯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 사람 이젠 너무 많이 상했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아버지가 그 말을 하기까지는 틀림없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존심이 현실을 인정하는 데 따르는 괴로움을 이겨내고 그렇게 말하게 했을 것이다. p.84

 

나는,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음악을 의심스럽게 여겼다(그것은 음악이 나를 강하게 우주 속으로 끌어올려서가 아니라, 그런 다음 나를 다시 본디의 장소로 데리고 돌아오지 않고, 더욱 깊은, 어딘지 모를 혼돈의 땅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p.93-94

 

제2부

 

위험이 안전보다 더 신뢰를 얻는 세상이다....

 

그런데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아예 발길을 멈추려는 기색조차 없다. 그것이 가진 이런저런 특징에 대해 한번 봐 두는 것이 자신의 공부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한, 그들은 결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p.98

 

그렇게 변하는 것이 마치 진보인 듯 생각한다. 삶이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하나의 쾌락이 충족되면 또 다른 쾌락을, 그다음엔 또다시 다른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일 뿐이며, 욕망을 거부하는 건 바보짓일 뿐이라는 세상의 주장에 거의 설득당한 모습이다. 그녀들은 이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진정한 힘은 언제나 스스로의 내면에 존재해 왔음에도. 

 

이런 자포자기에 이르게 된 것은 그녀들이 너무나 지쳤기 때문이리라. p.99-100

 

겉보기엔 전문가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경박한 쾌락에 물든 아마추어와 같다. p.101

 

"난 그 집을 보러 가려는 거야." 하지만 그녀는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계단 위의 커다란 집 말이야." "이런 바보!" 그녀는 재빨리 나를 붙잡았다. "거긴 이제 집 같은 건 없어."...

 

나는 한 사람씩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이 불타서 사라지면 그저 없어졌구나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들을 나는 경멸했다. p.105

 

우리 시대엔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p.108

 

그때부터 그녀는 -내가 이해한 게 옳다면- 몇 시간이고 밤의 창문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것이 자신과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난 꼭 죄수가 된 기분으로 창가에 서 있었단다. 별들은 자유로운 존재였지." 그러고 나면 그녀는 쉽게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사실 '잠에 빠진다'는 표현은 그 시절의 아벨로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차라리 잠은 '솟아오르는'어떤 것이라고 해야 했다. 이따금 눈을 떴다가 새로운 잠의 세계로 떠오르는 그런 것이었다. 가장 높은 세계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는데 아직 날이 새기도 전에 눈이 떠지곤 했다. p.109

 

브라에 백작이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기대한 것처럼 정치나 군사에 관한 회고록은 아니었다. 누가 그런 문제에 대해 백작에게 말을 꺼내면, 노인은 그저 퉁명스럽게 그런 건 이제 다 잊어버렸다고 대답하곤 했다. 반면 그가 잊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는 그 추억을 몹시 소중하게 여겼다. 먼 옛날 아득한 시절이 온통 그의 마음을 지배했다. 내면으로 눈을 돌리면 언제든 어린 시절 잠 이루지 못하던 북극의 여름밤이 펼쳐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p.110

 

"물론 그가 자신의 과거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꽤 있었단다. 그들은 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제 안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피와 살로 녹여낸 것뿐임을 몰랐던 거야." "책은 헛된 물건에 불과해." 백작은 벽 쪽을 향해 분노가 치미는 듯한 몸짓을 하며 소리쳤다.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피다. 피를 읽어야 해." p.111

 

나도 모르게 다시 아름답게 균형 잡힌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불현듯 아버지는 확실한 죽음을 원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확실성이야말로 아버지가 평생 바라던 것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원하던 걸 얻게 될 것이었다. p.115

 

이미 그때 나는 더 이상 절망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니다. 우리의 상상력이 재현해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개별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급하게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그런 개별 요소들의 존재를 놓칠 뿐만 아니라, 놓쳤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다. 실재는 느리게 흐르며 말할 수 없이 섬세한 것들로 가득하다.

 

예컨대, 이렇게 저항에 부딪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p.116

 

나는 나 자신의 심장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내 혈통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만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은 벌써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힘차게 뛰고 있었다. p.117

 

저 과거의 영향력과 그 연관관계로부터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비록 흐릿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어느 날 내가 몰래 버려두고 떠나온 것들이 분명했다. 유년시절을 영원히 잃지 않으려면, 그것을 완성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내가 그 시기를 잃어버렸는지를 깨달았고, 동시에 그 빈자리를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p.118

 

게다가 나는 혼자 있을 때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는 대개 지금처럼 우연히 묵게 된 방으로 찾아왔다. 그 방들은 마치 모든 게 잘못 돌아가기만 하는 불길한 존재인 내게 휘말리기를 원치 않는다는 듯이, 사정없이 나를 고독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언제나 창문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채 절박한 마음으로 그래도 저 바깥에는 아직 내게 속한 어떤 것이 있으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창문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창문이 벽처럼 막혀 있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나는 창문 저편에도 마찬가지로 구원은 없으며 오로지 무한한 고독만이 계속될 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스스로 불러들인 고독이었고, 이미 그 고독의 크기를 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p.121

 

그는 숫자에는 정말 문외한이었다. 그런데도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실수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숫자란 건 말하자면, 정부가 도입한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종이 위에서 말고 숫자를 실제로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시간은 금이라느니 하면서 시간이 돈과 같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고 한심한 착각일 뿐이다..... p.126-127

 

마음대로 흘러가라. 그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무언가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불현듯 그의 얼굴에 바람이 느껴졌다.... 깜깜한 방 안에서 혼자 크게 눈을 뜨고 앉아 있는 동안, 점점 방금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흘러가는 시간의 실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모든 일 초 일 초를 느꼈다. 미지근하고, 한결같으며, 대단히 빠른, 순간순간들을. 무엇을 하려던 시간들이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시리라. 바람이라면 왜 하필 어떤 종류든 닿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제 평생 그가 앉아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시간이 바람처럼 그의 얼굴에 불어오리라. 그 탓에 그는 신경통이 도져 고생하게 될 것이 뻔했다. 이 생각에 이르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한번 가정해 보자ㅡ온전한 상태의 뚜껑, 비틀리거나 휘어지지 않고 본디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그런 뚜껑이 가진 유일한 욕망은 오직 자신이 있어야 할 그 온전한 상태의 원통 위에 제대로 덮이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뚜껑으로서는 이보다 더 완벽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테고, 그것이야말로 뚜껑이 바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아실현일 테니까.... 아,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덮이는 것을 감시하는 뚜껑이 얼마나 될까. 인간과 관련된 사물들은 이처럼 자기 존재에 대한 혼란에 빠져 있다. 인간을 뚜껑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깔고 앉은, 직업이라는 원통을 몹시 마뜩잖아한다. 어떤 이는 너무 서둘러서 자신이 앉을 통을 고른 것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그곳에 놓인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가장자리가 찌그러진 통에 앉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연은 가지각색일 테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하자. 사람들은 어떻게든 현재 자신이 앉아 있는 통에서 굴러 떨어지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갈 생각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네의 저 온갖 기분전환거리며 야단법석들이 생겨났을 리가 있겠는가?

 

수백 년 동안 사물들은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니 어느새 타락하여 본디 자연스럽고 심오했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고, 주위 사람이 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허비하게 된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 그러나 만약 깨어 있는 자, 이를테면 밤낮없이 자신의 내면에서 충만을 구하는 한 고독한 인간이 나타나면, 타락한 사물들은 곧 그에게 적의와 조소와 증오를 드러낸다. 더 이상 온전히 자기 존재에 뿌리내릴 수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추구할 수도 없게 된 그것들은 한데 힘을 합쳐 그를 방해하고, 위협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도록 유혹한다. ... 그 강력한 힘은 끝도 없이 자라나 모든 생명체, 심지어 신조차 이 고독한 인간의 적으로 돌아서게 한다. 이 단 한 사람, 끝까지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고독한 성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그런 길을 걸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성자의 삶이 너무나 힘든 길임을 예감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길과는 다른 우리만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우리의 길 또한 성자의 길만큼이나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옛날 동굴이나 텅 빈 처소에서 홀로 살아가는 신의 제자를 에워싸던 그 모든 유혹이 고독한 모든 이들에게도 똑같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고독한 인간에 대해서 너무 쉽게 속단한다. 마치 그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아니,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은 고독한 인간을 만나본 적조차 없다. 고독한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연히 미워할 뿐이다. ... 그들은 그에게 역병을 옮기는 자라는 오명을 씌웠다. 그에게 돌을 던지고, 그를 마을에서 내몰았다. 어찌 보면 이들은 오랜 세월 뿌리내려온 본능에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고독한 인간은 보통 사람들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독한 인간이 고개를 숙인 채 자신들을 상대하려 들지 않자, 사람들은 다시 궁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오히려 고독한 인간의 의지를 북돋아주어, 그의 고독을 더욱 견고해지도록 만든 꼴이 아닌가 의심했다. 결국 그가 영원히 세상과 담쌓고 살도록 그들이 도와준 셈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방식을 바꿔, 정반대 되는 접근방식을 취했다. 명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떠들썩한 유혹 앞에서는 누구든 반색하며 고개를 들기 마련이니까. p.132-134

 

모순마저 뛰어넘을 강력한 표현력이 필요하다. p.138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면 그 일을 한탄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는 것보다 순순히 인정하는 편이 현명하다. ... 예전에는 오로지 안에서부터 시작된 삶이. 방향을 바꿔 밖으로부터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 전환의 순간이 오면 모든 게 분명해져서 내 인생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어떤 모호한 구석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게 있어 인생이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복잡하며 어렵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듯 분명했다. 그래서 이 불안정하고 예상할 수 없는, 어린 시절 특유의 자유로운 세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날이 어떻게 올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인생은 스스로를 사방의 벽에 가둔 채 갈수록 부풀어올랐고, 바깥세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오히려 나의 내면만이 더욱더 또렷하게 깨어났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 된 조화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시리라. 어쨌든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테고,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면 단번에 끝이 날 거라고 믿었다. 어른들을 보더라도 그랬다. 그들은 내적인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 일이 거의 없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어른들은 언제든 척척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처리했으며, 어려움에 봉착한다 해도 그 대부분은 외적인 요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

 

나는 다른 생활이 시작됐다고 해서 그 시절이 끝나지는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모두가 자유로이 인생의 단락을 나누지만, 그것을 꾸며낼 수는 없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 문제를 혼자 힘으로 명확히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는 못했다. 시도할 때마다 인생은 그 문제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 내게 일러주었다. 내가 만약 유년기는 끝났다고 주장한다면, 그 순간 내게 다가오던 모든 것이 전부 지나간 것이 돼버리는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장난감 병정이 차지한 자리만큼이나 딛고 설 데가 좁아져 위태위태해질 것이었다.

 

이런 발견이 나를 더욱더 고립된 상태로 내몰았음은 쉽게 짐작이 가리라. 이 문제는 나의 내면을 온통 사로잡았고, 내 마음을 최후의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이 기쁨을 슬픔이라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제까지의 나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하건대, 그것은 또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불분명한 나날이 계속됨으로써 나도 모르게 수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울스고르로 돌아왔을 때 나는 옛 장서들을 보자마자 거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만큼 그것들을 허겁지겁 읽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내겐 끝까지 다 읽을 생각이 아니면 아예 책을 펼쳐서도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는데, 이런 강박관념은 그 뒤로도 종종 나타나곤 했다. p.143-145

 

전체의 충만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안에 하나로 녹아들어야 하리라, 그 안에서 숨 쉬며 그 어떤 것도 놓쳐서는 안 되리라. p.146

 

그녀의 본성이 일으키는 모든 일은 마치 영원에서 비롯되는 듯했다. 이 영원의 세계야말로 그녀가 자기 자신을 알아보는 곳이었다. 영원과 분리될 때 그녀는 마치 돌아가는 길을 몰라 방황하는 불멸의 영혼처럼 고통스러운 듯했다. p.148

 

운명은 갖가지 무늬와 패턴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운명의 난관은 바로 이 복잡성에서 오는 것이다. 반면 인생 자체가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성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신에게 닿기 위해 바로 이런 드문 일을 추구한다. p.149

 

세상 이치라는 것이 얼마나 얄궂은지 사람들은 그가 소리칠 때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다가, 그가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보다 더 조용하게, 마치 그늘이나 시간처럼 움직이고 있을 때만 지나갔다. 그를 보기 꺼려했던 나의 태도는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부끄럽게도 나 또한 그의 곁을 지나갈 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곧 아예 그가 거기 없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p.150

 

오, 하느님, 그 순간만큼은 분명 당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엔 당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증거를 잊어버렸고 또한 다시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존재한다는 확신 속에는 너무나 두려운 의무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바로 여기 당신의 존재를 가리키는 증거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를 통해 행복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저희가 배운, 다만 모든 걸 받아들이고 판단하려 들지 말라는 격언은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고통이며, 또 무엇이 축복입니까. 그 답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계십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제게 새 외투가 필요해질 때ㅡ부디 저로 하여금 새 외투를 오래 새것으로 입을 수 있도록 하소서. p.152

 

영광은 한순간이지만 비참은 그 무엇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p.154

 

그는 행복이 멀리 사라져 영원히 돌아오지 않게 되어서야 진정한 위안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57

 

왜냐하면 이 세기는 실제로 지상에 천국과 지옥이 더불어 존재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의 실재야말로 그 시대를 존속케 한 원동력이다. ... 그의 왜소한 몸은 두려움 때문에 더더욱 마르고 단단해졌다. p.158

 

하지만 이처럼 일찍 성자가 되어 버린 사실 자체가 무언가 그 시대의 절망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 세상은 이토록 혼돈으로 가득한데도, 저 천상에서 누군가는 천사와 사이좋게 몸을 기댄 채 하느님의 무한한 빛과 보살핌 아래 평화로이 살고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독한 아집이 필요할 것인가? p.161

 

그 어떤 실수도 눈감아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의, 무겁고 텅 빈 낯선 거리를. p.162

 

성숙한 여인만큼이나 어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사생아 아들의 눈길이다. ... *그 자신의 손. 이 두 손 사이에는 어떤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또는 어떤 물건을 쥐거나 놓는 데 미리 정해진 순서가 있을까? 아니다. 모두가 협력하는 동시에 대립한다. 한 행동이 다른 행동을 상쇄한다. 정해진 질서란 없다. p.164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신이 없는 것처럼, 극장 또한 없다. 그것은 우리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할 때에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공동의 고난이라는 벽을 향해 외치는 대신에, 우리의 이해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묽게 희석시키고 있다. 고난의 벽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모여들어 힘을 모으고 있는데도. p.166-167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삶은 별 가치가 없다. 그것은 차라리 위험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스스로를 극복하여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다. ... 그 슬픈 울음소리는 오직 한 사람을 향한 부름이지만, 온 자연이 화음을 맞추어준다. p.168

 

하지만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울고 있을 뿐, 그 무엇도 당신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당신은 생각했으리라, 아 나는 이미 죽어 버린 존재란 말인가? 아마도. 그나마 새로운 점이 있다면, 우리가 세월이나 사랑보다 더 오래 견딘다는 사실일 것이다. p.169-170

 

완벽한 개방성과 통일성을 가진 고대 문화가 예전부터 많은 이의 눈에는 그저 과거의 유산으로만 비칠 뿐이라는 사실에 그는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그 시대에는 확실히 삶을 이루는 천상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이 존재라는 잔에 꼭 들어맞았다. 마치 두 개의 반구가 완벽하게 합쳐져 하나의 황금빛 공을 이루듯이. 하지만 합일이 이루어지기가 무섭게 그 안에 갇힌 정신은 그 실현이 그저 비유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러자 거대한 구는 무게를 잃고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 황금빛 곡선은 다만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을 조심스레 비출 뿐이었다. ...

 

그는 무심코 사과를 하나 집어 들어 바로 앞 탁자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 과일 곁에 존재하는 걸까, 하고 생각한다. 이미 완성되어 가는 사물들 곁에 완성된 상태이면서 동시에 계속해서 더해지는 존재로 있다는 것을. p.171-172

 

그는 깊어가는 밤의 정적 속에서 진실한 사랑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사랑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잠 못 이루는 밤 홀로 깨어 그녀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사랑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성적인 결합은 오히려 서로를 더욱더 고독하게 만들 뿐이라고 보았던 사포의 생각은 얼마나 올바른가. 그녀는 성(性)이라는 덧없는 목적을 초월하여 무한을 향했다. 그녀는 포옹의 어둠 속에서 만족이 아닌 동경을 구했다. p.173

 

한 번도 나 그대를 붙잡지 않았으므로 그대는 영원한 나의 것 ... 나는 그녀가 자신의 사랑에서 모든 수동적인 면을 없애 버리기를 몹시 갈망했음을 안다. 하지만 그토록 진실했던 그녀는 신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방향일 뿐이라는 걸 몰랐단 말인가? p.178

 

사랑 받음은 불타오르는 것이다. 사랑함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부터 피워 올린 불꽃이다. 사랑 받음은 소멸하는 것, 사랑함은 영원히 지속하는 것이다. p.179

 

이렇듯 공상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생략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상상력을 아무리 잘 통제한다 해도 공상과 공상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어떤 특정한 새가 아닌, 그저 한 마리 새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오, 하느님!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마음속에서 털어내고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p.180

 

하지만 '사랑을 받는' 여인, 다시 말해 사랑받는 것에 관대한 여인은 '사랑을 주는' 여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p.181

 

그 어떤 시인이 찰나의 인생과 그가 견뎌내야 했던 그 기나긴 나날을 조화롭게 엮어낼 수 있는가? p.182

 

오랜 고독을 통해 통찰력과 평정심을 얻고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그는 눈부신 빛처럼 내면을 뚫고 들어오는 신의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깨우치게 되리라. 하지만 그렇게 사랑받기를 바라면서도,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에 익숙한 그의 감정은 신과의 무한한 거리를 인식했다. ... 이런 배움의 길만큼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은 다시없다. p.183

 

어쩌면 결국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영혼의 무게를 견뎌낼 인내심'인지도 모른다. ...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도 그 신선한 맛을 잃고 내면의 순수한 자양분으로 변화했다. 그의 존재의 뿌리로부터 자라난 강인한 식물은 겨울을 이겨내고 기쁨의 열매를 맺었다. 그는 내적인 삶을 일구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 무엇 때문에 용서를 한단 말인가? 사랑. 그렇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

 

가족들은 돌아온 그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을까? 이제 그를 사랑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오직 신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느꼈다. 하지만 신은 여전히 그를 사랑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p.184-185 (원글 출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말테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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