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봄, 이렇게 오는 거 처음 보냐?

지구빵집 2022. 3. 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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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대망의 2022년 1학기 어드벤처 디자인 2 수업을 맡은 지능형 로봇 사업단 책임연구원입니다. 오늘 오후 3시 어벤디2 첫 시간으로 온라인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니 모두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상학적으로 일평균 기온이 5도 이상으로 올라가 9일 동안 떨어지지 않으면 그 첫날부터 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마음은 이미 봄입니다. ^^ 개인 방역 준수하시고, 힘차게 시작하는 3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Aviva - Princesses Don’t Cry (Lyrics) 유튜브 영상 주소 추가"

 

우리가 알든, 모르든 봄은 늘 이렇게 온다. 대학생들이 3월에 강한 이유가 '개강하니까'라고 한다. 아침 일찍 영상 0도를 오르내리고 출근할 때면 영상으로 올라가, 한 낮엔 7도까지 오르고 어느덧 16도까지 오른다. 개강 한 달이 지나면 따듯해지고 중간고사가 있는 4월 16일 주에는 벚꽃이 만개한다. Covid19로 2년간 고생한 사람들은 변함없이 봄을 기다린다. 그것도 아주 가물 때 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기다린다. 

 

수강신청이 끝나고 아이들 명단을 보고, 작년 2학기 들었던 학생들이 다시 수강하는 이름이 보인다. 산업경영공학과 한 학생은 다른 사람의 말을 대부분 구화(입모양)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해서, 대면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입이 보이는 마스크'를 지원받아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건 뭐 교수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서 leap reading mask 15장을 챙겨 왔다. 학위나 임용 규정에 따라 정규직 직원처럼 완벽하게 속하기가 어렵고, 연구실은 빌려 쓰니 좋은데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고, 방법은 할 일을 아주 잘하는 것뿐이다. 애써 자랑하거나 무엇을 하는지 알릴 필요도 없다. 결과는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보여주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드러나게 하면 된다. 

 

IoT 시스템 발주를 받아 5주 납기를 지켜 제작해야 하고, 몰입을 도와주는 theflow 제품을 개발 중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교수는 교수대로 바쁜 계절이 왔다. 준비는 철저히 하고 상황에 들어서면 흐름을 탄다. 어떤 것도 생각대로 흐르거나 무엇을 남길 것이라고 조금도 예측하지 말고 일상을 직면한다. 꽉 움켜쥔 손을 놓아야만, 마음이든 생각이든 비워야만 다시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한 순간도 나에게서 사라지거나 선명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들, 비우기 전에는 절대 내 자리를 채우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 받아들일 마음이 조금도 없을 때 나에게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조금씩 생각의 자리를 비우자마자 꾸역꾸역 밀고 들어온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무심히 지켜본다. 받아들임을 생각한다. 어차피 나와 그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 전구의 모양이나, 차의 색깔, 발 사이즈처럼 말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온전한 형태 그대로 만나는 일이다. 판단이나 평가, 비난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상실이라는 주제는 그동안 관습과 두려움, 동정표라는 진부한 문화적 보호막에 쌓여 쉽게 다뤄서는 안 될 대상으로 여겨졌다. 원하는 일이 실현되지 않거나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정확히 잃은 건 없더라도 뭔가를 상실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결국 그 상태에 안주하고 익숙해져서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잠재의식은 이기기 어렵다. 우리가 북극을 목표로 열심히 걸어가더라도 잠재의식이라는 코끼리의 등위에서 걷는 일일 수도 있고, 그 코끼리는 남극을 향해 걷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다 상실이 닥치면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이 상실이 지속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는 이 상실을 무엇에 대한 핑계로 사용하게 될까? 내가 이 상실에 관해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삶에서 무엇을 직시해야 할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상실 이후의 삶, 그리고 이는 절대로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림처럼 암울하지 않다. 그 그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 빠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아 봄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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