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이 가을, 어제도 오늘도 속절없이 눈부시다. 3개의 마라톤 대회를 평온하게 완주했다.
벌써 가을이다. 어제도 오늘도 속절없이 눈부시다. 며칠 째 길고양이 포도가 베란다에 오지 않는다. 대신 타작한 볏단 같은 누런색 큰 고양이가 베란다 문 앞에 얼쩡거린다. 우리 집 주위 영역을 아마도 빼앗긴 걸까? 그래도 그렇지. 주인집에서 지하층에 이사 오는 집을 위해 잡아간 것이란 강한 의심이 든다. 앞으로는 "뼈가 보약" 상표 고양이 사료를 매달 사지 않아도 되는 건지. 고양이 소리를 주위 집에서 모두가 싫어해서 차라리 잘 가버린 건 아닐까.
* 속절없다는 한자로 알기 쉬우나 순우리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그치지 않는 눈물이라는 뜻이다. 결국 세월을 멈추거나 흐르는 눈물을 그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10월 1일 토요일 정모, 자원봉사
누구나 핑계를 댄다.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한 핑계는 핑계가 아니고 일이 있기 때문이라서 이유가 되는데 나중에 핑계가 거짓이거나 그럴듯한 이유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이런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여 이미지를 쌓아나간다.
자원봉사를 맡아 달리지 않고, 요가 매트를 가져가 복근운동, 프랭크를 열심히 했다. 항상 30분 일찍 도착해 인라인장을 달리고, 요가 매트를 펴고 복근 운동을 한다.
2주간 미국 출장에 이어 7일간 격리에서 벗어나고 대회가 열리면서 목표를 세우니 조금씩 리듬을 되찾고 있다. 그러면 조화, 균형, 질서가 찾아오고 반복해서 하게 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중요한 집단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꽤 오랫동안 함께 움직여 서로 사이가 좋은 선배들과 실력 있고 모범적인 러너로 이루어진 특별한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삶이 온통 달리기로 가득 찬 시절이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 굳건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그룹, 구성원의 인간성이나 사회 경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집단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달렸다.
우연이 이끌었지만 필연적으로 밟아야 할 길을 걸었다. 누군가 준비했지만 비어 있던 자리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남산 산책로, 대공원 언덕, 혹한기 마라톤, 시즌 오픈, 통영 마라톤, 울트라 마라톤, 공주 백제마라톤 등 대회나 훈련을 빠지지 않았고, 훈련 일정이 잡히면 선배와 동료들과 함께 달리고, 두각을 나타내기보다는 끈기를 가지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마라톤 전사와 선배들이 만들어준 단단한 훈련과 원래 갖고 있던 건지는 모르지만 부단한 끈기는 일찍 원하는 집단의 입구에 들어오게 했다. 주로에서는 예측하지 않고 달렸고, 대회에서는 어떤 결과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늘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달리기는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연결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강하게 만드는 불변의 원칙 같은 것이다. 달리기는 두터운 공기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전부다.
어떤 집단도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같다. 누구에게나 열린 집단에서 구성원 모두가 들어갈 수 없는 집단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고, 소속감이 고취된, 늘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에 들어가는 길은 알게 모르게 그룹이 원하는 규칙을 잘 지키고, 극도로 자제하는 태도와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하는 것이다. 집단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일원이 되어 소속감을 확실히 느낄 정도로 애정을 쏟고, 일원과 동등한 자격을 최소한으로 얻어야만 그 집단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에 서게 된다.
잘 구성된 집단은 풋내기에게 특별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입의 과도한 열정은 구성원들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고 이질적인 요소가 된다. 특별한 집단에 이미 속해 있는 사람들은 애써 일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신입은 집단의 암묵적인 규칙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은 규칙을 잘 지킨다. 지킬 것은 지키고 금지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 가지고 있는 특별한 재능의 일부만을 드러낸다. 아주 조금씩 인정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찾는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스스로 들어가고 싶은 집단이나 모델로 삼는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10월 3일. 월. 강남 국제평화마라톤 뻐꾸기. 31km, 3시간 2분, pace 5분 52초
10월 8일 토요정모 11km, 1시간 8분, pace 6분 15초
10월 11일 화요일 훈련. 관문 체육공원 12.22km, 1시간 2분, pace 5분 9초
10월 13일 목요일 훈련. 관문 체육공원. 13.5km, 1시간 12분, pace: 5분 21초
10월 15일 토요정모. 10km, 1시간 2분, pace: 6분 14초
따뜻한 햇살과 더불어 시원한 그늘을 주는 곳, 다리 위로 8차선 도로가 있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마치 실내 운동장처럼 조용하고 평온한 곳, 춤을 추고, 보드를 타고, 체조를 하고, 늘 분주하고 기운이 넘치는 곳, 우리가 달리는 양재천 주로가 있고 일 년에 52번을 만나는 영동 1교는 참 좋은 곳입니다.
춘천 마라톤을 일주일, JTBC 서울 마라톤을 3주 앞두고 정기모임 열었습니다. 테이블을 들고오고, 돗자리를 펴는 일도 일찍 나온 분이 받아주어 수월하고, 오늘 자원봉사 담당자가 들고 오는 짐이 멀리서 보이자마자 달려가서 받아옵니다. 우리가 늘 모이는 자리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서로 배려하고, 함께 양재천 주로를 달리는 일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서 늘 즐겁고 웃는 얼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기도 합니다.
많은 회원님 나오셔서 인라인장을 가볍게 달립니다. 8시 20분 정도에 빙 둘러서서 감독 구령에 맞춰 제초를 합니다. 누가 이끌든 상황에 따라 어떤 체조와 프로그램이든 잘 하는게 또 우리의 장점입니다. 체조 마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오늘은 그늘을 따라 등용문까지 왕복하기로 합니다. 형형색색 운동화와 티셔츠, 싱글렛과 바람막이를 입고 두 줄로 나란히 출발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그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10월 16일 경주 국제마라톤 21.09km, 1시간 52분, pace: 5분 19초
10월 20일 관문 체육공원 7.77km, 43분 46초, pace 5분 38초
가장 젊고 반짝반짝 아름답고 눈부신 계절이 지나간다.
10월 22일 토요일 정모. 7km 44분 21초 pace 6분 23초
10월 23일 춘천마라톤, 42.18km 4시간 19분 10초 pace 6분 9초
단지 하루일 뿐인데 춘천에 다녀오면 가을이 획 가버린 것 같아 가슴이 시리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은 늘 대회가 열리기 전 출사표 심사와 대회 마치고 후기를 공모해 선물을 준다. 이번 대회전에 출사표를 공지를 늦게 알아 쓰지도 못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후기를 모집한다.
10월 29일 토요일 정기모임, 등용문 조깅 왕복 10km
올해 10월에는 정말 많이 달렸다. 대회를 3개나 참가하여 31km, 21km, 42km를 달렸다. 우리 삶이 어떻게 흐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준비는 철저히 하고 닥치면 흐름에 맡긴다.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좋아 보이는 것들, 쉽게 말하면 아비투스 책에 나오는 일곱 가지 자본같은 것들을 따라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스스로를 단련하고 습관으로 만들어야 할 중요한 것들, 꼭 필요한 것들을 게을리하지 말자.
마라톤 대회 후 우울증은 마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몸이 균형을 찾으면서 회복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완주하고 나서 서로 축하하고, 달릴 때 일어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 보면 피로도 풀리고 그동안 힘껏 훈련했던 고생도 스르르 사라지고 최상의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지나간다.
기껏해야 춘천에 다녀온 단 하루였다. 매년 10월이 가기 전 춘천 마라톤을 달리고 돌아오면 계절은 획 지나가고 가을은 아주 선명하고 또렷한 느낌이 든다. 어제 대회를 치른 흥분이 남아 월요일 아침 햇살은 따뜻하고, 단풍은 급격히 빨간색과 주황으로 물들고,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저녁이 오고, 하루 이틀은 역시 우울할 것이다. 몸은 4주에 걸쳐 천천히 풀코스를 달리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모든 러너들이 겪는 일이다. 영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멋진 달리기를 마치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세상과 더욱 친숙해지고,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최고의 절정 경험은 점점 다음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잊힌다. 속절없이 눈부신 일이다.
거리와 기록에 상관없이 마라톤 대회에서 긴 거리를 달린 후 느끼는 우울증은 모든 러너에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달리기의 결과 - 목표로 한 기록, 최선을 다했는지, 포기했는지, 아쉬움, 욕심이든 -에 따라 우울한 감정은 길거나 짧다. 대부분 러너는 기쁜 쾌감을 느끼고 다음날 아침 피로와 통증을 느끼게 되면 '하, 내가 또 달린 거야?' 하기도 하고, 기록과는 상관없이 허탈한 감정을 느낀다. 우울한 감정 역시 몸이 주는 것이라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러너에 따라서는 심한 무기력과 우울한 감정이 오래가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인 작가이자 마라토너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라톤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마라톤 우울증을 일컫는 ‘러너스 블루’는 바로 하루키가 ‘러너스 하이’에 비유해 만든 단어다. 하루키는 소설 '상실의 시대'로 우울함을 유발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마라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육체적인 피로에서 일찍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훈련이나 스트레스받는 일들은 가능한 한 피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푹 쉬거나 잠을 많이 자고, 가벼운 산책이나 음악을 듣는 것, 또한 지금까지 소홀히 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라톤에 대한 언급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록도 순위도 평가도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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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