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이 한 명도 없는 색색 의자 7만 개가 널려있는 잠실 주 경기장 관중석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달리는 사람이나 응원하는 사람은 모두 운동장에 있다. 피니시 라인을 멋지게 통과해 핑크색 줄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동그랗고 큰 완주 메달을 받았다.
"축하해, 잘 달렸니?"
"아니 형편없어. 4시간 45분이야. 완벽하게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때로 돌아갔어. 젠장."
"잘 됐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말도 참 예쁘게 한다.
"하, 이제 다 끝났다."
수도권에서 열리는 다른 마라톤 대회와 달리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대회였다. 아침에 피부로 느끼는 쌀쌀함도, B조에 속했지만 광주에서 대회 참가를 위해 온 조카와 함께 완주하기로 해서 D조에서 출발하고, 양화대교와 마포대교를 돌아 서울 시내 한강 북쪽을 동 서로 가로지르면 해방감을 만끽하고, 역시 32km 지점에서는 영혼이 빠져나가고, 마지막 5km를 옆에 있던 젊은 러너의 '지겹다. 이젠 빨리 끝내자.' 하는 소리에 정말 끝내고 싶어 눈물을 빼며 무작정 달린 고통이 다 끝났다. 기록은 형편없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스스로 감당하기로 한 힘든 고통을 모두 견뎠다는 마음에 꿀맛 같은 완주의 기쁨을 누린다.
드디어 마라톤 풀코스 피니시 라인이 보인다.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 동문으로 들어가면 여러 러닝 클럽에서 나온 동료들이 소속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주자를 함성으로 환영하고, 결승선 앞에서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골인하는 선수 사진을 찍는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체크기의 마지막 삑 소리를 듣고 완주 시간을 본다. 함께 훈련하는 동료들은 이미 들어와서 보이지 않지만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축하의 박수를 주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낀다. 보조 경기장으로 들어서니 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동그랗고 아름다운 큰 메달이다.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왔다. 보조 경기장으로 나가니 포토라인에서 멋진 사진을 남기려는 젊은 청년들로 줄이 길다. 귀찮기도 하고 별로 의미 없다는 것을 잘 아니 가볍게 무시하고 짐을 찾고 옷을 갈아입고 함께 달린 동료와 조카를 기다린다. 언제나 만나기로 약속하는 곳은 남자 탈의실 앞이다. 대회장에서 출발지와 도착지에 오로지 한 곳만 존재하는 아주 명확한 장소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오늘 대회 기록이 메시지로 도착한다.
"2022 LIFEPLUS JTBC 서울 마라톤 2022-11-06 (일) 상암 월드컵공원~여의도~잠실 종합운동장, 남자 배번호 #3038번, 대회기록은 04:45:39 페이스 06:46 min/km, 코스 전체 순위 5,678위, 코스 성별 순위 4,933위"
수원에 살고 있는 여동생 조카는 풀코스를 두 번 달렸고 광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어제 대회에 참가하려고 올라왔다. 삼촌이 페이스 메이커를 해준다고 좋아했는데 웬걸, 달리고 나니 조카는 2시간 25분으로 나보다 20분이나 먼저 들어왔다. 젊다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고 노련한 나이 든 러너보다 훨씬 잘 뛰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출전한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기억이 났다.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페이스메이커가 되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 달리는 러너라 할지라도 서서히 빛을 잃고 기억에서 잊히고 좋은 기록을 지키는 일도 힘든 시간이 온다.
JTBC 서울 마라톤 대회 참가부문은 풀코스와 10km가 있다. 42.195km를 달리는 풀코스는 상암 월드컵공원을 출발해 잠실 종합운동장에 도착한다. 10Km 코스는 같은 장소에서 출발해 여의도공원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이라 쌀쌀하다. 반바지 타이즈와 싱글렛을 입고 우비를 입는다. 날씨에 따라 체온을 잘 유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0km 코스를 달리는 젊은 청년들은 모두 핑크색 티셔츠를 받아서 광장은 꽃이 가득 핀 것처럼 기운이 넘친다.
15km를 지날 때 조카는 이미 앞서서 달린다. 지금까지 페이스를 늦춰 천천히 달리게 한 것으로 삼촌의 임무는 끝났다. 어서 달리라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20km 통과 기록이 2시간 2분 22초다. 2주 전에 춘천마라톤 영향인지 온 몸의 힘이 빠진다. 32km 지점을 3시간 22분에 통과한다. 좋은 기록은 아니지만 나쁜 기록도 아니다. 모든 러너에게 32km 지점은 영혼이 막 빠져나가려고 준비하는 곳이다. "아, 좀 걷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도심이라면 피니시 라인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줄 지하철역이 없나 하고 살피는 지점이다.
이제부터 마라톤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얼마나 인내하고 참을 수 있는지, 그동안 쌓았던 멘털이나 육체적 강인함과 훈련은 의미가 없다. 이럴 때는 목표를 아주 낮게 가져간다. "단 1킬로미터만 더 달리자."라고 생각하거나, "35km까지만 달리고 거기서부터 걷자."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아니면 욕지거리를 들리지 않게 한다. 모든 1km가 힘들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회에서 지키는 세 가지 원칙은 즐기고, 걷지 않고, 완주하기라고 하는데 이미 걷고 있으면서 갑자기 생각이 난다. 이제 5km 남았다. 옆에서 걷던 젊은 러너가 지친 모습으로 "이제 끝내자. 어서 달려서 이 지긋지긋한 경주를 끝내버리자."하고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는 느낌이 왔다. "그래 진짜 빨리 끝내고 싶다. 어서 피니시 라인까지 달려서 끝내자."는 생각을 하고 쉬지 않고 달렸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사랑, 애정, 만족, 풍요로움, 비애, 슬픔, 상실감, 분노, 증오 등 모든 감정은 한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감정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하지 않지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앞선 시간에 일어난 사건의 그늘 아래서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다스리고 어떻게 가져가는지에 따라 삶이 모습이 결정된다. 모든 일에 분노하는 사람이 좋은 관계를 이루고 사회에서 제법 의젓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잔소리가 많거나 참견을 잘하고 불만과 불평에 찌든 사람을 멀리해야 한다. 감정은 순간적이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 말은 늘 다른 표현으로 끝도 없이 반복되는 교훈이다.
2022년 서울 동아 마라톤, 춘천마라톤, JTBC 서울 마라톤까지 메이저 마라톤 대회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내년 4월을 기다린다. 겨울 훈련을 마쳐야 한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린다. 인간이 자연환경과 재해, 사나운 동물을 피해 주위를 살피며 민첩하게 움직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충분히 생각하고, 필요한 만큼 혼자 여유를 즐기고, 꼭 필요할 때 에너지를 사용해도 괜찮은 시대다. 올해도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룰 것이라고 말하고 다짐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삶에서 가장 이루고싶은 일들, 갖고 싶은 것들은 사실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거지 근성을 버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할 때 과감하게 도전하고 늘 배우고 성장하고 영감을 주는 정신의 문제다. 나의 두 발과 곧은 다리, 건장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에 감사하고 모든 주어진 날들에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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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