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달리기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태도와 같다.

지구빵집 2022. 11. 15. 10:54
반응형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스마트 폰을 멀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에 몰입하는 습관을 쌓기로 했지만 역시 자주 허물어진다.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그리워하고, 포르노를 보고, 담배를 피우는 일과 같은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에 쉽게 빠진다. MZ 세대의 다른 말은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이라고 한다. 왜 그 세대와 남자가 같은 지 알 수 없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꼭 하지 않아야 될 일도 없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의 뇌에 즐거움과 만족감, 잘하면 행복한 감정까지 주기 때문이다. 남자가 선택하는 무엇이든 그것들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콕 집어 선택한다. 마치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만 부모님을 만나는 일은 슬픈 일이다. 남매들이 번갈아 4주마다 당번이 돌아오는 부모님 모시는 주말에는 청주에 혼자 내려간다. 결국 자기 부모는 자신의 부모다. 아이나 와이프에게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가면 오전 10시에 도착하고, 달리기를 하고 느긋하게 출발하면 오후 2시에 도착한다. 점심을 늦게 차리거나 저녁을 일찍 차려드리고, 낮잠을 자고 티브이를 보고 장을 보러 가까운 마트에서 카레를 만들 재료-정확히 돼지고기 감자 양파 당근 카레-와 파, 마늘, 식용유, 계란, 과일, 요구르트를 산다. 남자가 알면 얼마나 알고, 요리를 하면 얼마나 하고, 장을 보면 무얼 사겠나 싶으면서도 집에서 사는 것들로 산다. 원칙이 있다면 가공식품(튀긴 것, 만두, 빠르게 조리하는 음식, 즉석요리류), 육가공류(햄, 소시지, 빠른 음식), 마트에서 직접 제조한 것들은 사지 않으니 장을 봐도 언제나 맘에 들지 않고 종류도 많지 않다. 그 많은 음식과 식재료들을 카트에 담지 않는 일도 어렵다. 되도록 집에서 하는 저런 원칙들을 무시하고 많이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정작 무서운 것은 우리의 무의식이다. 평소 습관이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가끔 친구를 만나러 나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도 하고, 티브이를 엄청 많이 3시간 정도 보고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잔다. 아버지는 아버지 방에서 주무시고, 어머니는 어머니 방에서 주무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책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절뚝거리며 나오셔서 어디를 가실 준비를 하신다. 어제 토요일에 남자가 집에 왔으니 오늘은 일요일이다.

 

"오늘 일요일이에요. 주간보호센터가 열지 않으니 안 가셔도 돼요." 남자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뭐? 일요일이라고?"

 

아버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시고 남자는 책을 덮고 아침 준비를 한다. 어제 장을 보고 와서 만들어 둔 카레를 데워 부모님 아침을 차린다. 카레처럼 편한 음식도 없다. 돼지고기를 다지지 않고 작게 썰어둔 고기를 사고, 당근, 감자, 양파를 준비한다. 끓는 물에 돼지고기를 삶으며 이물질을 제거한다. 당근, 감자, 양파 순으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어 끓인다. 보통 프라이팬에 재료들을 기름에 볶아 넣는데 별로 맛이 없고 기름기가 카레맛을 버린다. 재료를 삶아서 만드는 카레는 담백하고 먹고 나서 속이 편한 방법이다. 

 

아침을 드시고 부모님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고 남자는 티브이를 보고, 책을 읽고 잠을 자다가 점심을 차리려고 단잠을 깬다. 조금이라도 학교나 집으로 일찍 돌아가기 위해 12시가 되면 서두르지만 엄마와 아빠는 점점 느려진다. 오래 이런 일을 바라는 일은 거짓말이라서 그냥 감사하는 마음만 갖는다.

 

"그저 모든 게 감사할 뿐."

 

 

달리기는 육체와 정신, 의무와 책임, 현실과 이상을 이어주는 실과 같다

 

 

● 누군가 옆에서 보기에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것은 일을 잘하기 때문이다. 잘한다는 말은 자주 반복했다는 말과 같다. 남자가 마라톤 동호회에서 일을 맡아서 해 왔던, 매우 쉬워 보이는 일이 정확히 6번 남았다. 하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잘하고, 이유야 어떻든 꾸준히 했다. 젠장, 앞으로 몇 번 남지 않은 일을 잘하고 임원 일을 그만두면 쉬워 보이는 일을 이젠 하지 않아도 된다. 역시 변화에 관한 이야기라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심지어 남자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는 꼼꼼하게 하고 나머지는 상황에 맞게 흐름을 따르기로 한다. 모든 일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끝내는 것도 자신이다. 달리고, 돌아보고, 다시 달리는 일, 매일 수 백번씩 되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다짐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고수들은 늘 그렇게 한다. 

 

● 할 일이 없거나 급하지 않으면 학교로 가지 않고 집으로 온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일주일 동안 입었던 흰색 와이셔츠 4개를 직접 빨고, 버릴 것을 찾아 버리고, 청소를 한다. 무엇인가 흐트러진다는 생각이 들면 남자는 몸과 생활하는 환경에 집중한다. 잘 쉬고, 잠을 많이 자는 일에 집중하고, 주변을 청소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에 집중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여자와 장을 보러 이마트나, 한살림, 초록마을 이런 데를 간다. 야채나 파, 식재료 대부분은 남자가 필요한 것들을 산다. 역시나 집에서도 만들 카레 재료를 사고 굵은 깐 마늘을 사고 황태채를 사고 술을 사고 제철 음식을 산다. 사지 않아야 할 것들은 청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지 않는다. 산 물건에 대해 계산하는 일은 여자의 일이라서 짐을 카트에 싣고 박스에 담고 차에 싣는 일들을 여자와 함께 한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아다리가 맞는다거나 죽이 맞는다는 말보다 손발이 맞는다는 말을 쓴다.)

 

● 달리기는 참기 힘든 고통이나 심리적 불편함, 무언가 잃을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원하는 것들을 갖겠다는 태도와 같다. 정신이나 마음의 역할과 실제 물리적으로 이루는 것들과의 차이를 메꾸는 것이야 말로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할 일이다. 달리기는 달리기 자체로 즐거움을 주니 운동으로 만족하고, 생활이나 성공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연결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남자는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달리기는 육체와 정신, 의무와 책임, 현실과 이상을 이어주는 실과 같다. 느슨하지만 어쨌든 연결해야 하고 더욱 강하게 연결할수록 더 많은 희생과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사는 아이

 

● 밤늦게 들어온 아이는 빼빼로 데이라고 빼빼로 다섯 종류가 들어있는 박스와 만 원을 남자에게 주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아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현명하게 삶을 본연의 자기 삶으로 살아가는지. 엄마나 아빠가 따로따로 독립적으로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필요한 핵심만을 본 따 가진 아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인정을 받고 확고한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사자처럼 어슬렁 대고, 갈매기처럼 비상하고, 영양처럼 달리고, 독수리처럼 착지한다. 아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냉철한 관계를 맺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그를 배려하는 사람에게 늘 감사하며 지낸다. 아들을 바라보면 그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남자와 여자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도 기본적으로 말하는 게 가난한 가족에서 태어났으면 인생 전체가 부자가 되려고 고생하지만 부자가 되기는 힘들고, 반대로 부자 가족에서 태어났으면 인생 전체가 바보 같을 수는 있는데 부자가 된다고 한다. 아이들이 배운 무의식적인 행동들 때문이다. 부자인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에게 통째로 다운로드된 그 행동 말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자가 되기에 무의식적으로 알맞은 행동을 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정확히 똑같이 적용된다. 아들은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서로 바라볼 뿐이다.

 

남자가 아들을 볼 때마다 아들에게 하는 찬사와 추앙하는 말, 감탄과 경외감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가 빈곤한 남자와 풍요로운 여자 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일찍 병역을 마치고, 함께 집에 살지만 각자의 삶을 사는 스물두 살 남자아이는 미래의 가능성, 선택, 위험과 기회가 모두 뒤섞인 시간을 살고 있다. 남자는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아이는 어서 시간이 가기만을 바란다. 아이를 바라보는 남자는 모든 게 다 어리숙하고 혹시나 불에 델까, 마음이 다칠까 하는 마음에 근심이 늘어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사람 마음을 잘 읽는 아이, 자제심과 인내, 의사 표현을 과하다 싶게 절제하는 아이의 능력은 도대체 누구에게 받은 건지 궁금할 정도다. 믿음과 실제 일어나는 일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다르다. 믿음이나 신념은 진리보다 위험하다. 차라리 믿음과 신념을 거부하고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남자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 

 

 

 

●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1박 2일 친구들 모임이 속초에서 있었다. 친구 몇 명은 골프를 치러 아침 일찍 만나 출발하고 남자는 오후 2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속초행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 일 년에 세 번 정기 모임을 하고 가끔 번개 모임을 한다. 함께 있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외옹치항 대신호 횟집에 모여 자연산 회를 먹고, 속초 해수욕장으로 걸어가 폭죽을 터뜨리며 불꽃놀이를 하고, 근처 조개구이 집에서 조개구이를 먹고, 대관람차를 보며 내부가 수상하다느니 연인들이 많이 탄다느니 흰소리를 한다. 숙소는 신세계 영랑호 리조트를 회원 가격에 빌렸고, 술에 적당히 취해 자는 친구들에게는 화장지로 만든 불침을 놓는다. 잠들 때까지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아침에 부산을 떨며 일어나 돌아가며 씻는 데만도 두 시간이 걸린다. 숙소를 깨끗하게 치우고 어제 차를 세워둔 식당으로 간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외옹치항은 파도가 높게 인다. 아침엔 생대구탕 지리를 먹고, 근처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정오가 넘어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남아서 섭섭한 분위기다. 늘 남자들의 정기 모임은 이런 패턴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온 덕분에 구로 현장 숙소로 가는 친구가 운전을 해서 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막혀서 5시간 만에 돌아왔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따로따로 그러나 모여 서서" 모임을 만들어 지낸 지 35년이 되었다. 35년이란 시간 자체가 자랑스러운 거다. 대부분 사람은 단기적인 성과를 우러러보고, 인생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이루는 업적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20년 30년 근속, 아주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을 하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그런 삶이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기도 한다. 무엇이 맞는지 고민하는 중이다.

 

하나하나의 주제가 이야깃거리고 재미있어서 남자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알아듣기 쉽고 길게 말하는 게 좋은 건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고 강한 충격으로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매일 "난 성공한다.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룬다.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말을 100번씩 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말이 끼치는 영향을 적당히 실감하고 있다. 간결함은 복잡함이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준다. 원하는 것을 가지려면 늘 단순함을 추구한다.

 

 

외옹치항 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