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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마음을 삼가고, 홀로 있음을 참되게 한다. 장경 지음

지구빵집 2019. 6.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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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마음을 삼가고, 홀로 있음을 참되게 한다. 장경 지음

  오랜만에 어리섞은 눈과 원숭이 처럼 뛰어다니는 마음을 잡아주는 책을 읽었다. 깨우친 사람이 쓴 글이 아니고 저자 스스로도 배우며 몸으로 체화하고 실천하며 쓴 글이라 쉽게 읽히기도 하면서, 모든 구절을 마음에 새겨넣느라 천천히 읽었다. 

  신독의 뜻은 홀로 있을 때도 도리에 벗어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신독의 신(愼)은 삼가다, 진실로, 참되다라는 뜻이 있다. 독(獨)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음과 숨겨진 나의 마음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신독은 나의 마음을 참되게 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참되게 한다는 의미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주도하는 미디어 광고와 SNS, 유튜브는 우리의 일상을 한시도 내버려 두지 않고 지배한다. 생명의 존재 이유는 특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다 들어있다. "한 개인의 가치란 존재라는 기적에 이미 수반된다."-로저스. 우리가 무언가를 잘 함으로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존제하는 자체로 이미 가치가 확보된 것이다. 우리 자신을 절대적인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신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 자신과 우리안의 신성을 발견하는 순간을 찾기에는 명상 만한 훈련이 없다. 꾸준히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다. -見河-

  

신독은 홀로 있는 시간을 참되게 하고 나의 마음을 참되게 하는 방법이다. 그 속에서 마음이 넓고 여유로워지고 몸도 반듯하고 편안해진다. 또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함으로써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더 나아가 천리를 밝혀, 신명과 통하게 하니 높은 차원의 지혜와 힘을 얻는 길이 된다. 

목차 

들어가며_신독, 진정한 자립에 이르는 길

01 화이부동(和而不同): 패러다임의 전환과 신독

02 상제임여(上帝臨汝): 신과 함께 걷는 길

03 섭심시경(攝心是敬): 삼감, 신(愼)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다

04 잠복위소(潛伏爲昭): 홀로 있는, 독(獨)한 시간이 당신의 미래다

05 지기소지(知其所止): 지금 가던 길을 멈춰라

06 불용일물(不容一物): 마음에 한 물건도 남기지 말라

07 일신지도(日新之道):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08 거이사명(居易俟命): 지금 여기를 살다

09 주일무적(主一無適): 하나의 마음으로 산다

10 지성여신(至誠如神): 너희도 신이 되리라

11 실용기력(實用其力): 겸허한 마음으로 실천한다

 

첫문장:  신독이란 무엇인가? 

 

신독이란 삿된 것에 의지하는 바 없이, 오직 천리와 연결된 자신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그로써 주체적으로 자립하며, 한결같이 삼감으로 도리에 벗어나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충만하게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다. 유학의 개념인 신독에서 말하는 천리를 밝힘, 천리와 연결됨은 곧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하나님, 불가에서 말하는 관세음을 친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곧 신을 만나는 것이다. 즉 신독(愼獨)은 신(神)을 독대(獨對)하는 것이니 신독(神獨)인 셈이다. p.37

 

마음을 통제하는 길, 인심을 붙잡는 길은 삼가는 것이니 신독하는 일이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삼가는 것을 반복하면 마음은 길들여진 보라매처럼 부르면 자기 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음이 길들여질 때까지 미친 소, 미친 원숭이, 미친 망아지와 한판 승부를 해야 한다. 그 작업이 은미하다면 은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달래면서 온갖 장치를 설치하고 도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훈련을 한다. 처음에 삼가서 도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보상책 같은 것으로 설득하거나 속여야 한다. 급하게 붙잡으려고 서두르면 금방 도망가고 말기에 유인을 해야 하는 것이다. pp. 88~89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은 자극의 대상을 끝없이 찾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속적으로 특정한 욕망의 대상을 헤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구걸하는 노예처럼 불행하게 한다.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은 돈이 들지도 않고, 누군가를 위해 복무하는 것도 아니고, 내 욕망을 위해 분주한 것도 아니다.

홀로 가만히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도 평안과 자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자극들의 세계, 소음의 세계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는 심지어 도를 깨친 도인들이 터득한 대단한 삶의 기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익혀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그저 되찾아야 할,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삶의 본질이다. p.130 

 

얻지 못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자득, 자겸, 자족이니, 어디에 처하든 그 위치에 바른 도리를 반드시 얻는다는 것이고,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스스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임금이 평민일 때는 거친 밥을 먹으며 밭 갈고 소일하며 헐벗은 채 낮잠을 자기에 거리낌이 없었고, 왕이 된 후에는 문무백관의 공경을 받고 끼니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수랏상을 받으며 정사를 베푸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중이다. 신독은 시중의 방도이니, 자신을 비워 도심에 이른 후 세상의 모든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pp. 202~203 

 

정성스러움을 실천하는 대표 방법 중 하나로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 것, 말을 삼가는 것을 유충정공은 7년에 걸쳐 충실히 실천해 얻었다. 겉과 속이 같고 언행이 일치되어 한결같음을 얻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만나도 마음이 평탄하고 여유가 생겼으니, 그 누가 이러한 경지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실천으로만 가능한 것이니 신독을 실천했을 때는 반드시 얻는 바가 있다. 힘써 실천하지 않고 생각으로 헤아리기만 하면 기력이 소모되지만 유충정공처럼 오랫동안 갈고닦으면 삶 전체가 바뀌는 것이다. 신독의 지혜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험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안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실용기력(實用其力)해서 삶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p.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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