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른 생각 바른 글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인 성욕을 보는 관점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인 성욕을 보는 관점

 

  주위 환경, 다른 말로 세계는 늘 우리와 관계 맺고 있다. 모든 것을 끊을 때 세상과의 관계도 단절되는 것인가? 먹을 것, 입을 것, 보는 것, 들리는 것, 성적 욕망들이나 소유욕마저 우리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최소한으로 유지할 때도 우리는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미 세속적인 즐거움을 알고 있다. 노는 일이나 즐거운 일을 할 때 얻는 쾌감들이 습관이 되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규칙을 버리고 다른 원칙을 따르거나, 다른 세계의 행동 원리를 추종하게 되면 다시 익숙했던 쾌락을 찾아 돌아가기는 쉬울 것 처럼 보이지만 쉽지 않다. 선뜻 욕망을 내려 놓지 않고 고민되는 부분이다. 무언가를 습관으로 만들 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나에게 더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중에 덜어질 것을 생각지 않았기에 늘 잘 받아들였다. 내가 취한 것을 버리거나 덜어야 할 때는 오히려 고민을 하게 된다. 그를 또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다.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해서 탐욕이 생겨난 사람이 만약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한다.(Sn.767) 고통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불만족이다. 한편 욕망 역시 그 특징은 불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불만족이기에,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을 만들어 낸다. 성적 욕망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은 "욕망의 대상은 넘기 어려운 수렁이라고 나는 말합니다.(Sn. 945)" 보통 까마(Kama)는 성적 욕망의 대상을 의미한다.

 

  수렁이란 사랑의 단계로 열정적인 사랑의 순간이다. 이것도 중독의 일종이다. 중독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담배 끊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인용문에서도 보듯이, 가까이 있으면 좋고, 떨어져 있으면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고통을 회피하고 즐거움을 취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용문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 관계를 실험대상으로 했지만, 이것이 과도하게 되면 연인에 대한 집착과 속박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즐거움에 너무 도취되면 그것이 가져다주는 위험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된다.

 

"욕망의 대상에서 위험을 보고서,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安穩)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기 위해 갑니다.(Sn. 424)"

 

몸으로 자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말로 자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뜻으로 자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면에서 자제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면에서 자제하고 부끄러워하는 자는 보호받는 자라고 말해진다. (SN. I, Attarakkhitasutta, p.73)

 

참고할 만한 논문 3개를 연결한다.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1 율장을 통해 본 성욕과 성윤리 / 이자랑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0 욕망으로서 성욕에 대한 불교적 관점 / 이필원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5 불교윤리의 관점에서 본 한국인의 성윤리 / 박병기

 

연꽃과 수련 구분하는 법 ^^ http://blog.nie.re.kr/221048390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