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러너스

살면서 참 많이 달렸다. 3년 동안 달린 거리에 관한 이야기.

지구빵집 2020. 2.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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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참 많이 달렸다.

 

  지나간 아름다운 단 하나의 추억이 평생을 살아가는 힘을 주기도 한다. 지나고 나면 삶에서 좋은 시절이 아닌 때는 없다. 이미 흘러간 세월을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불편한 생각이 드는 시절이 있다. 돌아볼 때 늘 아름다운 시절로 보이면 좋으련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절도 낭비로 느껴지고, 후회되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회한이 드는 일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세월이 있다. 이것은 쉬지 않고 3년 동안 달린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햇수로 4년 차에 접어들고, 날짜로 만 3년이 지났다. 2017년 2월에 마라톤에 입문했다. 10개월 동안 730km를 달렸다. 2018년에 935km, 2019년에 807km를 달렸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다. 달리기에서 얻는 진정한 기쁨은 달리기 전이나 달리는 순간에도 오지만 달린 후에 느끼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거리가 10km에 불과하든, 풀코스(42.195km) 거리든 상관은 없다. 달리기로 마음먹고 달리는 순간에는 느낄 수 없는 벅찬 기쁨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달리기를 마친 후에 느낄 수 있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없던 게 불쑥 생기는 느낌이다.

 

  달리기는 생각하기 위해 하는 운동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는 운동이다. 육체가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방식으로 결국엔 몸만 남게 된다. 특히 장거리 달리기는 정신의 집중보다는 육체에 몰입하는 운동이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머릿속에 떠다니던 온갖 잡다한 생각이나 욕망은 온데간데없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달리는 몸만 보인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자기를 잊는 일이다. 튼튼한 허벅지와 굵은 아킬레스건, 엄지발가락과 발바닥으로 바닥을 치는 연속적인 행위만 남는다. 두 다리가 번갈아 앞을 향해 교차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은 마치 교향악처럼 크고 웅장해서 우리의 존재를 하늘과 바람과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달리기가 내면에 집중하는 운동이라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내면의 자아는 평화롭고, 고요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나 만나게 되는 것이지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나 좋은 기분을 느낄 때 만나지 않는다.

 

  생각 자체도 무거워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려놓는 일인데, 그게 힘든 일이다. 달리기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두 시간을 넘게 달리다 보면 고통이 서서히 올라온다. 이젠 더 단순해지기로 마음먹는다. 거리도 잊고, 힘들다는 생각도 잊으려 한다. 일반인의 달리기는 워낙 여유가 있다. 발걸음을 하나, 둘 세기도 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도 있다. 에너지의 소비와 동작의 효율을 생각하면 달리기도 한다. 결국, 사라지지만 사라지기 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라도 하듯 섬세하고 복잡한 최단 경로를 찾는다. 어떤 운동을 하든, 명상하든 그 행위에 자기 자신을 통째로 던져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대자연 속 하나의 사소한 미물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자아는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신을 만나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거대한 우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아가면서 그런 경지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인간이 하는 모든 분야에서 정상에 이르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몰입의 경지에 자주, 그리고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마라톤을 통하여 건강한 육체와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러너의 궁극적인 목표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행복과 기쁨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온다. 달리기가 주는 몰입과 육체적인 건강함보다 더 상위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얻고자 하는 가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기도 하다.

 

  물론 달리기로 얻은 좋은 것들과 바꾼 것도 많다. 우리 몸에 좋지 않은 3고(고지방, 고혈당, 고관절)와 멀어지고, 주기적인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운동 후에는 상쾌한 기분까지 누린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안정된 생활을 한다. 좋은 것과 바꾼 것은 얼굴이 좀 검게 타고,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외면적인 모습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바뀌었다. 사람이 바뀌니 하는 일도 조금은 달라지고, 해야 하는 일도 새롭게 생겼다. 무엇보다 뱃살과 불규칙한 생활이 주는 일상의 복잡함을 약간은 늙어 보이는 것과 바꿨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아직 모른다.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분기마다 열리는 큰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풀코스를 뛰었고, 가끔 열리는 하프 마라톤(21.0975km)을 뛰었다. 대회를 앞두고 3개월 가량은 기록 단축을 위해 훨씬 더 먼 거리를 달렸다. 매년 마라톤 풀코스를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달렸다. 하프코스는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할 때는 수시로 달렸으니 횟수를 세는 일은 의미 없다. 사계절 내내 달렸다. 계절이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이야기했지만, 주로(走路)에서 동료와 함께 달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 달리기의 끝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달리는 일이 나에게 남겨진 전부로 생각하기도 했다. 달리는 일 말고도 인생에는 경험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이 있기는 있다.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과 행복한 순간들을 뒤로 미루기는 아까웠다.  

 

  달리기에 대한 글도 참 많이 썼다. 달리는 사진을 많이 찍고, 달리는 길도 전국적으로 늘어났다. 청주, 통영, 대구, 광주, 제주, 공주, 경주, 철원, 대전까지 시간이 맞고, 여유가 되면 어디든지 동료들과 함께 다녔다. 춘천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출사표를 쓴 글이 당선되어 세 번이나 신발을 부상으로 받았다. 100km 청남대 울트라 마라톤은 비록 64km에서 포기했지만, 멈추는 일이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훈련에 참가하는 습관 덕분에 주말도 새롭게 변했다. 허벅지 부상으로 3개월을 달리지 못할 때에는 우울했다. 한 여름 공주 백제 마라톤은 정말 여름을 통째로 삼키고 올 정도로 힘들었다. 여름 장거리 훈련을 할 때는 관문 운동장 400미터 트랙을 100바퀴 돌았다. 훈련 후에 관악산 계곡에서 백숙과 파전을 먹으며 노는 일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춘천에서 '가을의 전설'이라 불리는 마라톤 대회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 가을을 3번 가졌지만 한 계절도 잊을 수 없다. 서울의 심장을 헤집는 남산 훈련은 무더운 여름 날 숲으로 우거진 그늘을 달리는 혜택도 누렸다. 그와 함께 달린 대회는 언제나 나는 듯이 달리고 즐거웠다. 달리는 일에서 보여주는 예의바르고, 착실한 훈련과 목표 달성의 버릇이 일상에서도 그대로 되기를 바랐지만 아니었다. 아직도 삶과 달리기를 연결하려는 마음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아무리 달려도 마음속에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사람에 대한 내면의 분노일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갖지 못하는 절망감일 수도 있다.

 

  특히 달리는 주로에서 항상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달리고, 편안함을 느끼고, 어디까지 함께 달릴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했다. 지나고 보니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새롭게 성장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시절을 조금도 아쉽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즐거운 시간이 오면 아낌없이 누려야 한다. 수명이 줄거나 건강에 좋지 않다는 핑계로 즐거운 시간을 줄이면 안 된다. 욕망을 채우는 일은 허망한 재로 치닫는 일이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교제하고 눈빛을 나누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장수가 무슨 소용인가? 욕망일지언정 하지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제까지고 달릴 수 있다면 계속 달리고 싶다. 가장 좋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올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기대하지 않아야 현실이 되면 더 좋을 것이다. 방금 한 말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있다.

 

 

2019년 동아일보 동아마라톤, 공주백제마라톤, 경주마라톤을 달리고 얻은 런저니 메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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