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삶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책을 읽고 나니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가 살아온 삶이 부러웠다. 적어도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를 그냥 놔둘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부류다. 사실 누구도 스토너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가 맡은 일을 하는 데 의무감 비슷한 열정을 가지고 했다. 그가 대학교수가 아니라 농부로 살아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워낙 잘 참는 사람이라서 깊은 고민도 없이 삶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캐서린 드리스콜 사이에 있었던 사랑이 설사 불륜이었다고 해도 그에게는 걸어가는 길에 잠깐 빠져드는 일로 치부해 버린다. 물론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하는 여인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1965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출간 50년 후 전 세계를 매료시킨 아름다운 소설, 스토너. 책 전체는 매우 고요하게 흐른다. 나지막한 진동으로 시작해, 시작과 다름없는 울림으로 끝난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모든 인물과 사건은 평온하기만 하다. 남자가 쓴 소설이라서 간결한 문체와 소박한 묘사가 돋보이고 특히 자신의 생각이 들고나감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행복한 삶인지 불행한 삶인지는 모두 사람 관계에 달려있다. 인생을 살아 낸 결과는 대부분 인간관계 결과와 같다. 인간관계가 좋으면 나름 행복한 인생이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그 반대다. 대부분 남자에게 인간관계는 실패이기 때문에 남자 사람에게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고, 반면에 여자에게 인간관계는 상호 호혜를 기반으로 하고, 넓고, 진솔하기 때문에 성공한 인간관계다. 대부분 여자 사람 인생은 남자보다는 행복한 경우가 많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도우며 자란 환경, 친척집 일을 도우며 농대를 다니다 영문학으로 옮긴 학교 시절, 첫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기대할 게 없는 결혼 생활, 대학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고, 딸을 낳고, 불륜에 빠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암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남자가 느끼고 보는 시각으로 그려진다. 스토너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생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죽기 전에 되새긴다. 스토너는 인생에서 기대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자란 집이나 대학교를 다니던 친척집에서, 교수 연구실이나 집에 있는 서재에서 늘 일어났던 일이었다. 어두운 한쪽 편 공간이나 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면 어느덧 그 공간과 자신이 일체가 되는 경험을 스토너는 늘 했다.
스토너가 살아가는 삶은 늘 어중간했다. 어처구니없이 당하는 삶에서 스토너가 잘하는 일은 여전히 인내하고 참는 일과 흘려보내는 일이다. 미주리 대학 농과대학으로 입학하며 부모님과 헤어지는 일, 학창 시절에 친했던 친구 핀치와 매스터스와 만나 대화하는 일, 처음 만나 사랑한 이디스와 만남과 결혼, 불편하고 바라거나 기대할 게 없었던 결혼 생활과 딸 그레이스 스토너의 출산, 영문학 지도 학생인 캐서린이란 여성 사이에서 일어난 불륜과 어처구니없는 이별, 학교를 그만두고 암과 투병하다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대상에 대해 열정이나 분노, 애착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스토너는 외부에서 그에게 가하는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면으로 참고 이겨내는 일은 마치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이었다. p. 53
여기서 전쟁은 단순히 스토너가 참전하지 않은 전쟁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전쟁은 모든 삶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었다. 누구나 일, 사랑, 가족, 관계, 가난, 업적 등과 무수한 전쟁을 치른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스토너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짐승 같은 성질'만 남는다. 스토너의 생각을 읽었다. 우리가 치르는 모든 전쟁은 결국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녀가 받은 교육의 전제는 그녀가 살다 보면 불쑥 만날지도 모르는 거친 일들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보호를 해주는 사람의 우아하고 세련된 장식품이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의무를 생활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런 보호를 거의 신성한 의무처럼 생각하는 계급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립 여학교에서 읽기, 쓰기, 간단한 산수를 배웠으며, 여가 시간에는 바느질, 피아노, 수채화 등이 장려되었다. 고상한 문학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장려 대상이었다. 그녀는 또한 옷차림, 몸가짐, 숙녀다운 말씨, 도덕 등에 대해서도 배웠다. p.78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p.107
이제 나이를 먹은 그는 압도적일 정도로 단순해서 대처할 수단이 전혀 없는 문제가 점점 강렬해지는 순간에 도달했다. 자신의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럴 가치가 단 한순간이라도 있었던가. 그는 세상 사람들이 언제고 인생의 어느 한 때에는 모두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p.252
마음만 먹으면 몸에서 의식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 일이 고민거리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멍하기만 했다. 이 일이 중요하다고 납득시킬 수 없었다. 이제 마흔 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p.254
남자들이란 왜 이런 어리석음에 휘둘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69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이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p.272
스토너는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그녀의 집으로 왔다.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눴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 같았다. 그렇게 봄날이 흘러갔고, 두 사람은 여름을 고대했다. p.273
그들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스토너는, 딸이 말했던 것처럼, 딸이 자신의 절망과 화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남은 나날들을 조용히 살아갈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조금씩 더 술을 마시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자신의 삶에 스스로 무디어지게 만들면서. 스토너는 딸에게 그것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녀가 술이라도 마실 수 있어서 감사했다. p.350
스토너는 삶에 존재하는 큰 굴곡이나 사건, 반전이나 우연을 만들어 내지 않는 고요함으로 인생에 대한 통찰을 전해준다. 목적에 알맞은 삶이란 없다. 모든 인생에는 알지 못하는 숭고한 의미가 있다. 애써 캐내거나 미화하지 않아도 존재한다.
스토너, 삶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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