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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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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들만 가능한 기능을 최소한으로 구현해보는 테스트 코드를 짜는 게 아니다. 작가도 그렇고, 미술가도 그렇고, 창업 기업의 대표도 그렇게 한다. 많은 실패는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임을 잊지 않는다. 물론 실패는 개인의 감정을 혼란스럽게 한다. 위축되게 하고, 감정을 흔들고, 앞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꺽을 때도 있다. 바로 그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기에는, 그래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늘 시도하고 작은 테스트를 통해 새로운 작업을 하고 검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말미에 나온다. "내게 단편이라는 포맷은 다양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점검하고 시도해 보기 위한, 이른바 테스트 코스 같은 장이었다."

 

● 반딧불이

 

십사오 년 전, 나는 도쿄의 한 기숙사에 살던 시절,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자 친구였던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 그녀는 친구가 유서 한 장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택한 사건 이후로 마음을 닫았다가 나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치유된다. 그러나 스무 살 생일, 그녀는 나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잠적해버린다. 연락을 해도 대답이 없는 그녀를 반년 이상 기다리던 내게 학교를 그만두고 요양소로 들어간다는 그녀의 짧은 편지가 온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 때문에 너 자신을 탓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탓하지 말아달라는 거야." p.41

 

"언젠가 다시 한번, 이 불확실한 세계의 어딘가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p.42  

 

 

● 헛간을 태우다

 

팬터마임을 하는 그녀와 나는 한 결혼식 피로연에서 알게 되어 내연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로 떠났던 그녀는 새 애인이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준다. 아내가 집을 비운 날 그녀와 그는 나의 집으로 놀러 오고, 남자는 내게 기묘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자기는 가끔 남의 헛간에 방화를 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조만간 나의 집 근처에 있는 한 헛간을 태울 거라는 것. 나는 지도를 사서 헛간이 있는 곳들을 표시하고, 그 코스를 정기적으로 달린다.

 

●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나는 귀가 아픈 사촌동생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라는 부탁을 받고 함께 버스를 탄다. 함께 올라탄 버스 안의 분위기는 기묘하기만 하고, 나는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 와서인지 향수에 젖는다. 내가 병문안이라는 것을 간 것은 친구 녀석의 여자 친구가 아파서 입원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환자복 안으로 보이던 그녀의 가슴, 그리고 그녀가 들려준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상대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기분도 바뀌고, 아주 사소한 작업의 차이가 큰 의미를 갖는 일도 있잖아. 그러니까 쉽게 포기할 건 아냐." p.97

 

"암이란 요컨데 그 사람이 평소에 살아가는 방식이 응축된 거야." p.120

 

"그러니까, 누구의 눈에나 보이는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가." p.125

 

 

● 춤추는 난쟁이

 

코끼리 공장에서 일하는 나는 더없이 아름답게 춤추는 난쟁이가 나오는 꿈을 꾼다.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공장의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노인에게서 그 난쟁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노인을 만나 난쟁이가 혁명 전 아름다운 춤 덕분에 궁정에 불려가 춤을 추게 되었지만, 혁명 후 도망갔고 그 후로는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공장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반해 환심을 사고자 꿈속의 난쟁이에게 춤추는 능력을 달라고 한다.

 

● 세 가지의 독일 환상

 

‘겨울 박물관으로서의 포르노그래피’ ‘헤르만 괴링 요새 1983’ ‘헤어 W의 공중정원’ 세 파트로 나뉜 실험적인 소설. 각각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겨울 박물관, 베를린에서 만난 난감한 청년과의 이야기, 환상 속 공중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 비 오는 날의 여자 #241 · #242

 

4월의 비 오는 어느 날, 핑크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초록색 비닐우산을 든 여자가 나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들고 있는 검은색 아타셰케이스와 케이스에 찍힌 마크 #241을 보아하니, 그녀는 화장품 방문판매원이다. 혼자 남은 집에서 술을 마시며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나는 초인종이 울리자 가만히 숨을 죽인다. 얼마 뒤 여자는 현관을 떠나 빗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과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그녀를 생각한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조용히 밤이 찾아오지만, #241 여자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반딧불이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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