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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장욱진 미술관과 예비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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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아들에게 예비군 훈련 통지서가 날아왔다. 작년에 제대한 아이는 짜증이 밀려오는 모양이다. 원래 한국 남자들은 제대를 하면 근무하던 부대 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부대가 있던 지역을 다시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남자에게도 군대가 행복한 곳이라고 회상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남자는 아들에게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할 일을 제 때 하지 못하면 훨씬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아들은 잘 모른다. 아들뿐만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선택이나 결정이 그렇다. 행동도 그렇다. 결정을 하든 하지 않든, 행동을 하든 안 하든 어쨌든 대가를 치르지만 내용은 다르다. 사뭇 다르다. 우리가 결국 후회하는 것은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니라 하지 않은 행동을 후회한다. 사람은 모두 그렇게 죽는다.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다른 일을 경험하려고 하는 남자의 용기가 가상하다. 

 

그림, 조각, 음악 등 어떤 예술 작품을 보든지 전시 작품과 만나는 경험은 우리에게 특별한 종류의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감성의 폭을 넓힌다. 예술은 지식과 상관이 없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친다. 대개는 좀 더 깊이 보는 사람의 눈을 닮게 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전혀 상관없다. 언젠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새어 나오기만을 바라면 경험은 완성이다.

 

양주시 장흥면 주소를 찍고, 부곡리 동원 훈련장을 찾아간다. 12시가 입소 시간이라 일찍 가서 점심이라도 먹을까 하다가 아들이나 남자나 그런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20분 전에 도착해 부대가 있는 동네 앞 스타벅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아들은 연신 '아, 커피 너무 맛있다.'며 악을 쓴다. 오죽 들어가기가 싫으면 저럴까. 아들을 훈련장 정문에 내려주고 남자는 바로 장흥면에 있는 양주 시립 장욱진 미술관으로 향한다. 지갑에 새겨진 묘한 새 그림을 찾다가 혹시 장욱진 화가의 그림 중에 있을까 벼르던 곳이었는데 마침 딱 소리가 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미술관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아닌데 어떤 미술관을 가도 기분이 좋아진다. 좋을 수밖에 없다. 미술관은 대개 건물이 깔끔하다. 남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모든 것이 미술관에 있다. 푸르고 푸른 곳이다. 통으로 된 공간이 많은 넓고 천장이 높은 곳이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조용하다. 밝은 곳은 밝고 어두운 곳은 어둡다. 일행이 있다면 숨바꼭질이 가능하다. 사전에 작품에 대해 알고 모르고는 상관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눈치 보지 않는다. 미술관에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엽서나 그림, 수건이나 머그컵을 살 수 있다. 체험용으로 둔 좋은 종이, 색칠 공부용 엽서들이 무료로 제공하니 많이 가져올 수 있다. 평일에는 더없이 평화로운 곳이다. 

 

미술관 바로 앞에 양주 시립 민복진 미술관이 있고 주차장이 아주 넓다. 미술관을 다니면 늘 좋은 일이 생긴다. 생경한 경험은 기본이다. 간혹 입장료가 무료인 경우가 있다. 바로 옆에 다른 미술관이 있는 것처럼 간혹 다른 예술가와 겹쳐 특별 전시회를 여는 경우가 있다. 경기도 미술관에 갔더니 다른 전시를 하려고 공사 중이라 원래 있던 전시를 구경하지 못할 경우는 사람이 없어 한적한 공간을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오늘도 좋은 일이 전부 생겼다. 장욱진 미술관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민복진 미술관은 '민복진과 전뢰진'  기획전을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그림을 보고 건너편에서는 조각을 감상했다. 기획전이라 개막 공연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일찍 학교로 간다. 

 

두 전시에서 공통 주제는 가족이었다. 벗을 수도 없이 평생을 짊어져야 하는 가족이라니.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을까?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생기지 않고 지겹고 불편한 옷을 걸친 느낌을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은 또 깊숙한 곳에 달라붙어 바꾸기가 어렵다. 오는 길은 아주 짜릿했다. 올 때와는 다르게 처음 가는 길이었고, 차에 기름은 거의 바닥이고, 비가 조금씩 내려 제1 순환 고속도로는 많이 막히고, 내비게이션으로 동작하는 핸드폰 전원은 거의 방전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면서 돌아왔다. 

 

훈련을 받는 아들은 2박 3일이 무한정 느리게 간다. 입소하여 중대와 내부반을 배정받고 비가 오면 실내 교육, 맑으면 훈련이 있을 것이다. 매 식사 시간에는 맛없는 밥을 먹어야 하고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시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 따라 늦게 혹은 빠르게 지나간다. 스스로 하는 일이 많으면 시간은 훨씬 빠르게 지난다. 군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아무리 일정대로 생활하더라고 시간은 늦게 간다. 남자의 시간은 진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강을 건너면 또 강이 나타나고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난다. 남자는 매일 기도한다. 앞에 놓인 무수한 강물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장욱진 미술관 '채움의 방식'

 

민복진과 전뢰진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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