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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짧은 삶, 꽃을 활짝 피우고 제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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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서쪽 오이도 바닷가 옆에 있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나름 좋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모든 일엔 회한이 남는 법이다. 우드, 슈드, 쿠드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 해야만 했는데 하지 못한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일을 줄여서 말하는 남자의 단어다. 누구나 그런 것들을 줄이고자 악착같이 살아간다. 남자도 예외는 아니다. 삶이 짧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고, 주어진 삶이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는 것, 제대로 삶을 살지 않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아직 회한을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삶은 적당한 때가 되어서야
우리가 원하는 꽃을 피운다.
우리가 할 일은
부지런히 꿀을 따는
일이다. -견하

 

 

이곳에 온 지 3년 반,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자는 높은 계급을 달았다. 학교를 가지 않은 아들은 21살에 1사단에 입대해 병장으로 제대했다. 아이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 방법이 없다. 부모님은 더 많이 늙어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기대했고, 큰 누나는 교통사고로 재활 병원에 있다. 남자는 특별한 학위도 없이 아이들을 가르쳤고, LA와 샌프란시스코, 그랜드 캐년과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127회 보스턴 마라톤을 달렸다. 인간은 유일하게도 무엇인가 행동할 때에만 교훈을 얻는다. 그것도 책에서 배우는 죽은 교훈이 아니라 살아서 펄떡이는 생동감 넘치는 건강한 교훈을 배운다. 준비 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할수록 더 분명하고 위대한 교훈을 갖는다. 학위가 없으면서도 가르치는 일과 골똘히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앞으로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봄과 가을에 축제가 열리면 아주 넓은 공연장으로 쓰기도 하는 큰 호수와 신전은 겨울을 빼고 분수가 하늘 높이 솟는다. 얼마 전에 리모델링 한 대운동장 전체를 휘감아 주변으로 높게 솟은 둑방을 달리는 일도 좋았다. 체육관에서 검우회 아이들과 호구를 쓰고 검도 대련을 하고 피트니스 스튜디오에서는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 날이면 근육을 만들었다. 학교에 있던 7학기의 반은 창업지원 센터 구내식당을 이용했고, 나머지 반은 학생 복지관 교직원 식당에 갔다. 백목련이 많아 밤에도 연구실 앞은 환했고 한 여름부터 배롱나무가 여기저기 붉은 꽃을 피웠다. 학교에 가장 많이 심긴 배롱나무는 겨울로 접어들면 두툼한 짚단으로 보온하는 작업을 한다. 

 

 

신전 앞 호수

 

 

학교 정원 여기저기 예초기로 풀을 깎을 때면 수박 향기가 며칠 동안 머문다. 봄에 한 번 깎고, 늦여름에 한 번 풀 깎는 소음을 듣는다. 연구실 앞 도서관에 예약해 둔 책을 찾고, 읽을 책을 넣어둔 인터넷 보관함에 쌓인 책을 빌린다. 항상 그렇지만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은 때가 되면 어디서든 나타난다. 방학은 인적이 드문 캠퍼스에 가끔 초중고 학생을 위한 행사가 열린다. 정문 입구 옆에 콘퍼런스 홀은 결혼식이나 학회 행사로 주말에 혼잡하다. 주차장이 이곳저곳 넓어서 가끔은 아주 멀리 주차하고 걸어오는 일도 재미있었다. 

 

정문 앞에 900원짜리 아메리카노 카페는 학기 중에는 항상 붐비지만 방학 동안은 기다리는 줄도 사라진다. 늘 가는 이건 미용실, 짧은 머리는 10분 만에 아주 멋진 헤어 스타일로 잘 깍지만 긴 머리는 깎아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20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늘 친절하고, 건장해 보이는 딸은 노란 머리로 학생들을 맞이한다. 가끔 예전 동료나 외부 손님이 찾아오면 스타벅스 3층에 상황 삼계탕 식당을 가는데 먹는 것만으로 건강에 좋겠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한 번은 학회 행사에 참석한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이 삼계탕을 앞에 두고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가물가물해 포털사이트를 조회하니 2020년 5월에 이곳에 왔다. 임용과 재임용, 캐어 사업단, 지능형 로봇 사업단으로 소속이 변경되었고, 매 학기 창의 설계와 IC-PBL 실습 강의를 하였다. 가르치는 일이 맞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지내는 일이 지겹지도 않았나 보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하지 못하는 일이다. 물론 배워서 잘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한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든 다 잘 맞는 사람은 없으니까. 혹시라도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만 못한다고 생각한다. 

 

 

신전 앞 호숫가 졸업식 날

 

 

2주 후면 남자는 학교 일을 그만두고 거대한 나무 무덤 같은 곳을 떠난다. 하지 말자고 한 '나름대로 즐거웠다.'라는 말을 기어이 한다. 떠난다는 것은 이 생활을 접는다는 뜻이다. 접는다는 의미는 이제는 다른 삶을 산다는 말이다.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말이다. 늘 꿈꾸던 것들이 실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때때로 삶이 더 메마르고 가혹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든 변화를 겪고 나면 늘 사람들은 '조금 더 일찍 겪었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겪어보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더 좋았다는 표현이다. 남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러 면으로 편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여유 시간이 많으면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할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나 상황의 문제다. 고통과 친해져야 하고 힘든 일을 맡아야 하고 끊임없이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밟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리를 추구했지만 대가를 치르기엔 부족했다. 이제 대가를 치를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안다. 조급한 마음이 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행동한 것으로 삶이 변하지만, 하지 않은 것으로 삶이 변한다. 얻은 기회로, 얻지 못한 기회로도 삶은 얼마든지 모습이 달라진다. 남자를 믿는다고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 변화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것이다. 산책하고 걷기, 운동하기, 멋진 몸만들기, 코로 호흡하기, 책 읽기, 깨끗하게 씻기, 청결함 유지하기, 청소하기, 정리 정돈하기, 건강한 식단 차리기, 간단한 요리하기, 필요하지 않은 것 버리기, 글씨 쓰기, 말투 바꾸기, 연설 연습하기, 연필로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달리기, 푸시업, 스쾃, 체조... 오직 필요한 것은 맨 몸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아무것도 필요한 것은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신전 앞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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