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러너스

1월 러닝, 달리는 내내 노을을 본다. 서쪽이라서

지구빵집 2021. 1. 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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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5일.

 

운이 좋게도 봄이 끝나갈 무렵 우울한 도시(오이도, 시화방조제, 몇 개의 공단이 있는 이 도시는 처음부터 우울했다)에 있는 학교로 왔다. 사전 준비나 리허설, 예행연습을 하는 이유는 더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외적인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함이다. 물론 심리와 정신적인 면으로 한 번이라도 연습을 하면 실제는 더 잘하게 된다. 행사, 공연, 녹화를 망치는 대부분은 연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훈련을 할 게 아니라 행운이 늘어나게 하고(불행에 대처하고), 리더십을 키우고, 상황에 대처하는 창의력과 임기응변을 발휘하도록 가르치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2021년 매월 러닝 포스팅 목록

2021.01.30 - [호모러너스] - 1월 러닝, 달리는 내내 노을을 본다. 서쪽이라서

2021.02.20 - [호모러너스] - 2월 러닝, 실용주의 러너에서 마스터 러너로

2021.03.26 - [호모러너스] - 3월 러닝, 난 내일 다시 바다로 나간다. 무엇이든 극복할 테니까.

2021.04.15 - [호모러너스] - 4월 러닝, 흐름을 따라 눈부신 달리기를 이어가기

2021.05.31 - [호모러너스] - 5월 러닝, 사람이 세월을 기다리지 세월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2021.06.30 - [호모러너스] - 6월 러닝, 여름은 고난으로 가득한 뜨겁고 열정적인 계절

2021.08.01 - [호모러너스] - 7월 달리기, 장마와 무더위가 여름의 본질은 아니다.

2021.08.31 - [호모러너스] - 8월 달리기,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

2021.09.05 - [호모러너스] - 9월 달리기, 달리기가 의미가 없어지면 무언가 채우겠지.

2021.10.31 - [호모러너스] - 10월 러닝, 그토록 뜻밖의 달리기

2021.11.30 - [호모러너스] - 11월 달리기, 달리기에는 삶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목적은 없다.

2022.01.01 - [호모러너스] - 12월 달리기, 달리기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

 

 

오늘 8개 월이 지나 처음으로 학교 운동장 트랙을 달렸다. 운동장은 주변이 둑방처럼 높이 둘러싸인 길 안에 있다. 운동장 안은 트랙 구분도 없고, 축구장도 조성하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고 황폐하다. 간혹 바람을 피해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달리는 내내 노을을 바라보고 달린다. 학교가 서쪽 끝에 가까우니 해 지는 시간은 서울이나 동해보다는 10분에서 30분 정도 늦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4km를 가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렸다. 노을빛은 아름다웠지만 날씨는 춥다. 낯선 주로는 늘 흥분되고 설레게 한다. 이러면 화요일과 목요일에 관문 체육공원 트랙을 달리는 일도 굳이 참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늦게 퇴근해도 된다는 이야긴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1년 1월 14일.

 

나를 달리는 러너의 세상으로 안내한 사람은 아니지만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더욱더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리도록 가르친 종석과 함께 달렸다. 사람은 적응을 잘하는 종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종족이다', '검은 머리 짐승에게 선의를 베풀면 안 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같은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런 말은 금방 허물어진다. 오류가 없는 완벽함은 우리 종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육체는 정신이 받쳐주고, 정신은 육체를 고양시킨다. 종석이를 달리기로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더 열심히 훈련하거나 아니면, 노화를 늦추는 것이다. 나이들면서 종석이보다 늦게 늙어가면 저절로 이길 것은 분명하다. 꼭 이길 필요는 없다. 

 

잘 달렸다. 갈 때는 6분 페이스 올 때는 5분 페이스로 달렸다. 기온은 -2도. 양재천도 많이 얼어있다. 

 

1월 26일 비가 와서 취소.

 

1월 28일 춥고 바람 많이 불어서 취소.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을 만나서 술자리를 갖거나 하는 일로 빠진 날은 없다.

 

1월 러닝이 끝났다. 겨우 5번 달렸다. 어쩌면 인생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운동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어쨌든 1월 러닝은 형편없다. 정말 망했다. 겨울이라는 말로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 생활에 성과도 없이 지나간다. 생각해 보니 한 일도 거의 없다.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못한 일이 많다. 몸 상태도 썩 좋지 않다. 잘 먹지 못해서 그런가? 가장 많이 달리고 열심히 훈련했을 때가 성과도 좋았고 글도 많이 썼다는 말을 들었는 데 사실이다. 달리지 않으면 잃는 거다. 잃어버리기 시작하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삶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달린 날도, 달리지 않은 날도, 잘 달리든, 못 달리든, 마음에 들었든, 들지 않았든 이미 지나간다. 시간을 대할 때는 항상 이런 마음으로 대해라. 지나간다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로도 마음이 저려서 그냥 보내기 싫어서 결사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보내는 모든 날들에 분노하고, 얼마나 잘 낭비했는지 생각하라. 어차피 남은 날들도 다가온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면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지나간 시간이 된다.   

 

아마 2월에는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21년 1월 5일. 화. 4.3km 에리카 캠퍼스 트랙 5바퀴

2021년 1월 14일. 목. 13km. 관문 운동장~영동 1교

2021년 1월 19일. 화. 15km. 관문 운동장~영동 3교

2021년 1월 23일. 토. 15km. 관문 운동장~영동 3교

2021년 1월 30일. 토. 13km. 영동 1교~관문 운동장

 

 

한양대학교 ERICA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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