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러너스

12월 달리기, 눈이 오면 모두 묻힌다. 녹을 때까지.

지구빵집 2020. 12.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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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었고, 정확히는 46개월이 되었다. 꾸준히 달리면서 느리지만 한 번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는 남자의 모습은 보기에 무슨 굉장한 일을 하고, 자신이 무어라도 된 것처럼 보이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배운 것도 많았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잃은 것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달릴지 모르지만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계속 달리고 싶다. 2020년 달리기를 전부 모아 본다.

 

 

2020년 매 월 달리기 포스팅 목록

 

2020.01.31 - [호모러너스] - 2020년 1월엔 얼마나 달렸을까?

2020.02.29 - [호모러너스] - 2020년 2월 달리기가 주는 즐거움이 줄었다.

2020.04.01 - [호모러너스] - 3월 달리기, 육체와 정신은 분리할 수 없다.

2020.04.21 - [호모러너스] - 4월 달리기.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20.05.29 - [호모러너스] - 5월 달리기, 언제까지라도 달리고 싶다.

2020.07.01 - [호모러너스] - 6월 달리기,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놀고 맘껏 달려도 시간이 남는 계절

2020.07.31 - [호모러너스] - 7월 달리기, 의지를 믿지 말고 환경을 바꿔라.

2020.08.25 - [호모러너스] - 8월 여름달리기, 달리기도 춤이라면 가볍고 우아하게.

2020.09.21 - [호모러너스] - 9월 달리기, 빠르게 달릴수록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2020.11.06 - [호모러너스] - 10월 달리기, 하루하루 가득 차는 가을에 달리기라니.

2020.11.18 - [호모러너스] - 11월 달리기, 목표를 더욱 높게 잡아야 할까, 아니면 낮춰야 하나.

2020.12.26 - [호모러너스] - 12월 달리기, 눈이 오면 모두 묻힌다. 녹을 때까지.

 

 

 

12월 1일. 12km. 트랙 8회전 조깅, 2회전 100미터 질주 4회, 20회를 달리는데 100미터를 30초에 달리는 속도로, 1km를 5분에 달리는 빠르기로 달리고, 다운 러닝 2회전 하면 400미터 트랙을 32바퀴 돈다. 7시 5분에 시작해 정확히 8시 15분에 끝났다.

 

루틴은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의식할 것도 없이, 혼자서 실행한 완벽한 훈련이다. 남자는 삶을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루틴(routine)이란 이런 우아한 완벽함을 말한다. 사전에 나오는 의미는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다. 선수들이 최상의 운동 실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이상적인 상태를 위한 자신만의 고유한 동작이나 절차를 수행하는 일을 말한다. 지독하게 반복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지만 늘 변한다. 행동과 인지, 또는 그 둘을 종합한다. 최적화되어 있으며, 흔하지 않고,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해 익힌 익숙하고 우아한 행동이다. 루틴이 반드시 스포츠나 운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 수 있다. 공부, 업무, 집안일, 이동하고 무엇인가 준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항상 들리는 작은 카페라고 치자. 우리는 그곳에서 빵과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커피를 가져다주는 점원의 행위를 관찰하면 루틴을 이해할 수 있다. 점원은 아마 몇 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스푼 하나를 집어 커피를 몇 방울 떨어뜨려 빵을 커피에 약간 적시고 스푼을 정확히 컵의 끝에 맞도록 배열하고 냅킨 몇 장을 빵 아래 깔아 가져다준다. 어쩌면 아침마다 볼 수 있는 가장 황홀한 풍경일 수도 있다.    

 

날씨도 춥고, 전염병 상황이 좋지 않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늘 혼자 나와서 아주 빠르게 달리는 분과 모르는 러너,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축구하는 동호회 두 팀까지 그러니까 아무도가 아니라 운동장에 아주 많은 사람이 있다. 과천팀 몇 명이 나와 이야기하다 가버리고, jj팀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훈련하는 사람이 없으니 기분도 나지 않고, 속으로 어휴 하면서 뜸을 들이고, 아마도 대충 하다 가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무너진 루틴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준비 운동을 꼼꼼히 하는 게 먼저다. 서둘러 몇 바퀴를 일찍 달리는 것보다 준비 운동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부상을 방지하고 달리기를 즐기기 위해서 더 좋다. 날씨가 추워 방한복과 운동복과 바람막이, 모자, 장갑을 착용한다. 조깅으로 달린다. 보통 조깅은 1km를 6분 30초에서 7분으로 달리는데, 동료와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달릴 수 있는 속도를 말한다. 8바퀴를 달리고 100미터 질주를 마치고 타이즈와 바람막이를 걸치고 달리기 시작한다. 5바퀴를 세고 다시 1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몇 회전을 도는지 잊지 않는다. 점점 속도를 높여간다. 마지막 5바퀴는 가장 전력을 다해서 빠르게 끝까지 매끄럽게 달린다. 다운 러닝으로 몸을 평상시로 돌아가게 한다.

 

마무리 훈련으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고 집으로 온다. 저녁을 준비한다. 운동하는 사람은 잘 먹어야 한다는 것도 무시한다. 고기도 이젠 별로다. 달래 간장하고 계란 프라이 2개, 멸치볶음이 전부다. 늘 제법 있어 보이는 밥상을 원했지만 포기한 지가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수수하고 단출한 식사를 좋아하기로 한다. 가짓수가 많은 식탁도, 맛이 요란하거나 자극적인 음식도 줄이기로 한다. 고기라든가 형형 색색의 요리는 차리기도 불가능 하지만 스토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집에서는 라면처럼 자극적이기보다는 수수하고 모자란 듯 속이 편한 음식을 겸손하게 먹기로 한다.

 

혼자 컴퓨터도 하고, 책도 조금 보다가 욕조에 물을 받는다. 뜨겁다 싶은 욕조에 들어가 있는 순간은 기분이 참 좋다. 입욕을 하고,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도 막상 하기 전에는 미루기 일쑤다. 핑계를 만들면 한 트럭이 넘는다. 이건 큰 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늘 단호하고, 급격하게 해야 하고,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작을 일을 대하는 자세,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하는 자세, 환경과 애완동물에 대한 생각처럼 태도가 그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유다. 지속적인 좋은 태도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 감정과 기분을 알 수 없는 인간은 가장 무서운 존재다. 

 

40도 정도 되는 욕조는 10분 정도 명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세탁기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땀에 젖어 물에 담가 두었던 빨래를 한다. 겨울에 달리기 훈련을 하면 빨래 양이 늘어난다. 여름 한창 더울 땐 팬티와 브라 정도, 반바지와 타이즈, 싱글렛과 손수건이 전부지만 겨울 달리기는 속옷부터 보온 상의, 바람막이, 버프, 두툼한 털모자, 안쪽에 털이 있는 긴 타이즈까지 빨아야 한다. 장갑은 두껍고 잘 마르지도 않으니 방바닥에 깔아 말리고 가끔 빨기도 한다. 하기야 훈련 옷들이 매번 속옷처럼 자주 빠는 옷들이라서 주섬주섬 주물러 빤다. 메이커 옷들이 좋은 옷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메이커 옷은 금방 늘어나고 별로다. 손으로 비틀어 물기를 짜서 베란다 건조대에 널면 루틴이 끝난다. 빈틈없이 아름다운 루틴을 완성하기란 어떤 분야에서든 어렵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다. 딱히 기다릴 이유도 없지만 모든 모양과 소리, 색깔을 일시에 묻는 풍경이 보고 싶다.  

 

12월 3일 목요일 12km, 관문 체육공원 400m 트랙 32회전. 코로나도 위험하고, 수능 날이라 추워서 그런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축구팀은 계속 축구만 하고 달리는 사람은 계속 달린다. 엊그제 화요일과 똑같이 정확하게 훈련을 마쳤다. 아름다웠다. 우리가 걸어야 할 빛나는 여정(旅程)은 언제나 존재한다. 걷다가 힘들면 걷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쉬운 길인가. 

 

진짜 잠깐만 뛰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억지로라도 몸이 나가니 마음이 따라주었다. 늘 그랬다. '이제 그만 달리고 들어가자' 하는 생각이 한 바퀴 돌 때마다 들었다. 심지어 스무 바퀴? 열 다섯 바퀴? 아니 열 바퀴만... 하면서 아예 형편없는 목표를 정하려고 했다. 그래서 400미터 출발선이 다가오면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지나치려고 힘을 냈다. 그만두려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출발선을 앞서 지나가니 포기하거나 그만 달리려는 마음이 조금은 후퇴한다. 무엇에든 몸을 먼저 단련해야 한다. 몸이 받아들이게 해야 마음이 열린다. 이전에 했던 완벽한 훈련이나, 끝나고 느끼는 좋은 기분은 훈련에 몰입하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느낀 즐거움과 자신이 대단해 보이고 멋진 마음은 그때 그 순간뿐이다. 바로 환희를 느낀 그 순간이 전부였다. 우리 마음이 항상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섯 바퀴씩 끊어서 세면서 달렸다. 헷갈리지도 않을뿐더러 정확히 셀 수 있다. 다섯을 하나로 센다. 스물 두 바퀴째 달리면서 옆에 누군가 있었다. 과천 마라톤 팀 선배인 듯 보였다. 함께 달려서 가까스로 서른 바퀴를 달렸다. 덕분에 목표 달성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짧지만 강력한 작은 루틴을 끝냈다.

 

12월 5일 토요일. 번달. 영동 1교에서 관문 운동장 왕복

 

12월 8일. 화. 관문 운동장에서 영동 1교까지 왕복 

 

12월 17일. 어드벤처 디자인 1 마지막 수업이자 작품 콘테스트 행사를 마쳤다. 공식적으로 종강이고 다음 주부터 아이들은 방학이다. 지적이고 세련되고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공부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자신을 정확히 알고, 하나를 가르치면 정확히 아는 아이들에게 욕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행동이나 공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닦달을 하거나 핀잔을 주고, 더 배우도록 채근해서도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일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관문 운동장을 출발하자마자 만나는 관문 사거리 굴다리에 걸려있는 온도 습도계는 출발할 때 -4도를 표시했다. 화요일에 출발할 때 -6도에도 잘 다녀왔는데 오늘은 더 힘들다. 몸이 변했기 때문이다. 무작정 몸을 움직여 나왔기에 나약한 생각이 들기 전에 무턱대고 발을 뻗어 달려본다. 그런 러너를 마음은 이기지 못한다. 겨울 달리기는 매서운 날씨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겨울 달리기를 겨울달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남자는 아직 혼자 달리는 일에 재미를 붙이지는 않았다. 작은 습관을 만들기는 어렵다. 12월엔 유독 혼자 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지치거나 싫증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2월 19일. 토요일. 영동 1교에서 관문 운동장 왕복 13km. 출발할 때 -10도인데 햇살이 나서 선바위 부근을 지날 때 온도계는 -5도를 알려준다. 오후에는 총회를 온라인 Zoom으로 진행한다. 모든 인간의 삶에서 완벽이란 극히 드문 일이고 완전한 인생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두려움을 숭배하여 두려움을 벗어나듯, 완전하지 않은 삶에 감사하고 숭배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일을 준비하고 시나리오를 여러 개 만들어 둔다. 언택트 온라인 총회를 진행하기 위해 사전에 온라인 회의실을 만들어 연습도 했지만 마음속엔 의구심도 들고, 불안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행동하고 나서 실제로 벌어진 일로 배워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12월 22일. 화. 혼자 나가서 달렸다. 혼자 달리는 일이 막 재미있어지려고 한다. 추울 때는 달리면서 생기는 젖산이 금방 해소되지 않아서 더욱 힘들다. 힘들면 몸이 굳어지고 더 힘들다. 만약 추운 날씨에 긴 거리를 달리게 된다면 돌아올 때는 너무나 춥고 허기지고 걷기도 지친 상태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욕을 해대며 돌아오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아주 재수가 좋은 경우에 말이다. ^^

 

12월 26일. 토. 남자는 도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건지,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목요일 가족들과 파티를 하느라 빠지고, 오늘 달리기로 마음먹고 나선다. 다른 동료들은 8시간 일정으로 관악산 둘레길 32km 트래킹을 한다고 했다. 이런 겨울에는 너무 무리하지 않아야 하고, 중간에 돌아오면 다른 동료들의 마음이 약해지는 원인이 된다는 생각으로 영동 1교까지 달리기만 하자고 생각한다. 2주 전부터 관문 운동장은 폐쇄 중이다. 도착하니 JJ팀 영철, 용현 선배가 보여서 아는 척을 했다. 반갑게 맞아주고 함께 달리자고 한다. 허걱, 아는 척을 괜히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는 잠실 철교까지 32km를 달린다고 한다. 나와 영철 선배는 14km에서 턴해서 돌아오면 32km 달리는 동료와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거의 맞을 거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km당 5분 20초의 속도로 달린다. 등용문 수질 관리소에 들어가 잠깐 목을 축였다. 드디어 한강으로 진출한다. 궁금했다. 거센 강바람은 여전한지, 탁 트인 강의 하늘, 윤슬과 변함없이 흐르는 물결이 궁금했다. 오랜만에 한강 바람을 쐬었다. 역시 추운 바람이다. 작년 겨울 같으면 시즌 마감 마라톤을 달리고 있었을 텐데, 모든 마라톤 대회는 2022년 말까지는 열리지 못할 것이다. 왼쪽에 한강을 두고 바람을 맞으며 500미터를 달리고 나서 출발지점으로 귀환하기로 한다. 30km를 달리기로 한 용현 선배에게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도 늦지 않게 달리지만 몸이 많이 굳었다. 버프를 뒤집어쓰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니 점점 늦는다. 관문 운동장 3km 남겨놓고 영철 선배에게 잡혔다. 같이 천천히 달리면서 무사히 관문 운동장에 들어왔다. 

 

jj팀 선배들은 나를 함께 운동해도 되는 사람으로 조금은 인정하기 시작한다. 기분이 좋았다. 노력하고 애쓴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 남자는 자신을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주는 실망감에 잘 적응하게 되면 머리에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나이가 된다. 수준급 달리기 선배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든가, 함께 훈련 할만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일은 멋진 일이다. 오늘 장거리 27km는 2020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린 장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장거리(20km 이상)를 자주 달리지 않았던 훈련에 대해 반성했다. 내년부터는 매월 한 번은 꼭 장거리를 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올 해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일기 예보는 말하는데, 29일과 31일 훈련을 빠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속절없이 보내는 세월이 이렇게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갑자기 하늘이 어둡다. 눈이 오시려나 모르겠다. 

 

12월 29일. 화.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추워진다고 한다. -1도의 날씨라서 달리기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관문 운동장에서 명희 선배를 만나 천천히 달리기로 한다. 회원 모두에게 나누어 줄 장갑을 몇 개 가지고 맡겨놓아야 된다면서 작은 배낭을 가지고 왔다. 나를 만나고, 함께 성장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플랫폼 '밑 미' meet me가 신선하다. 시대는 자기가 중심인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찾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가는 일이 필요한 시대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도 없고, 누군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을까? 우리는 기껏해야 아들 세대가 자기들 시대보다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대와 맞섰고, 이제는 겨우 자신의 앞가림이나 그럴듯하게 하며 살아가는 세대다. 우리 부모님들은 마음대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살았던 세대고.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상처는 왜 생기고, 심리적 불안은 어디서 오는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조금은 해석할 줄 알게 되었다. 해석을 못하는 메시지는 꽁꽁 묻어두는 것임을 알아간다.

 

1년에 작게 잡아 50번을 왕복하는 관문운동장과 영동 1교 주로를 아주 이 잡듯 세세하게 알고 있다. 12개 굴다리까지 거리와 화장실이 있는 곳, 정확히 2.5킬로미터마다 있는 이정표와 건물들의 위치, 어느 곳이든 주로의 방향이 바뀌면 건물이나 풍경이 달라지고, 양재천에서 위로 올라가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어디가 나오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명희 선배는 자기가 훨씬 오래 달리고도 여기가 어디고 저 건물이 어떻고 이야기를 하는 데 잘 모르는 눈치다. 영동 1교에 도착해 장갑을 맡기고 바로 되돌아온다. 오는 길은 좀 더 빠르게 달리고 마지막 3km를 5분 이내로 달리니 땀이 흠뻑 난다. 달리고 나면 훈련 때 입던 옷을 때 빼듯이 비누로 비벼 빠는 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세제를 넣고 살짝 주무르고 바로 탈수하면 된다고 한다. 남자는 참 힘들여 빨래를 해왔구나 생각했다. 무엇이든 잘 아는 선배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산에 갔던 일, 관계, 애인, 집안일, 말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이야기하면서 달리니 금방 다녀온 느낌이다. 목요일은 엄청 추운데 어떡하지? 하는 고민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날 훈련 시간 직전에 결정하면 된다. 오지 않을 일은 고민하는 사람은 굉장히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나 지나가는 세월이 아깝고 서글프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가? ^^

 

12월 31일. 목. 관문 운동장 ~ 영동 1교 13km. 운 좋게도 마지막 날을 달렸다. 

 

 

12월 1일. 화. 12km 관문 체육공원 트랙 32회전

12월 3일. 목. 12km 관문 체육공원 트랙 32회전

12월 5일. 토. 15km 영동 1교 관문 체육공원 왕복

12월 8일. 화. 12km. 관문 운동장 영동 1교 왕복

12월 12일. 토. 14km. 영동 1교 관문 운동장

12월 15일. 화. 13km 관문 운동장 영동 1교

12월 17일. 목. 13km 관문 운동장 영동 1교

12월 19일. 토. 13km 영동 1교~ 관문 운동장

12월 22일. 화. 13km 관문 운동장 ~ 영동 1교

12월 26일. 토. 27km 관문 운동장 ~ 한강 청담 2교 지나 반환

12월 29일. 화. 13km 관문운동장 ~ 영동 1교 왕복

12월 31일. 목. 13km 관문 운동장 ~ 영동 1교

 

180km?  ㅎㅎ 좋아!

 

 

겨울 눈은 모든걸 덥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곳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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