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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2022년 12월 달리기, 삶은 내리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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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망했다. 

 

 

너무 좋다. 어쩌면 제대로 망한다면 원하던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일이 아니고 그 상태, 돈이 아니고 그 마음이 가득한 느낌말이다. 남들에게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보이는 거 말고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 이런 것들이 진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 거야. 먼지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보인다. 난 계속 달릴 거라고!

 

남자는 자꾸만 "이제 정모는 세 번 남았고, 공지는 두 번만 하고..."라고 말한다. 때때로 달리기가 미워지기도 하지만 아직은 좋은 게 더 많아 미워하지 않는다. 그래 몇 번 안 남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지지? 남자는 갑자기 말이 없다.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주의를 빼앗기고 신경 쓸 곳이 줄었다는 사실로 마음에 든다. 

 

 

2022년 매 월 달리기 포스팅 목록

2022.01.31 - [호모러너스] - 22년 1월 달리기, 달리기는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는 것

2022.02.28 - [호모러너스] - 22년 2월 달리기,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2022.04.01 - [호모러너스] - 2022년 3월 달리기, 자기 수양이란 하기 싫은 때조차 할 일을 하는 것

2022.05.02 - [호모러너스] - 2022년 4월 달리기, 살면서 참 많이 달렸다.

2022.06.02 - [호모러너스] - 2022년 5월 달리기, 꼴값 떨지 말고 잘 달리기나 해.

2022.07.01 - [호모러너스] - 2022년 6월 달리기,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2022.08.01 - [호모러너스] - 2022년 7월 달리기, 돌아 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

2022.09.01 - [호모러너스] - 2022년 8월 달리기, 우리가 죽는 순간엔 지극히 단순해진다.

2022.10.03 - [호모러너스] - 2022년 9월 달리기, 쉬운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2022.11.01 - [호모러너스] - 10월 달리기, 3개 마라톤 대회 완주

2022.12.01 - [호모러너스] - 2022년 11월 달리기, 달리기는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태도와 같다.

2023.01.02 - [바른 생각 바른 글] - 2022년 12월 달리기, 삶은 내리막길이다.

 

 

12월 1일 목요일 훈련. 관문 체육공원 영하 5도, 조깅 8회전 100미터 질주 4회, 기록주 5km 22분 35초

 

온도가 낮은 추위 속에서 달리는 겨울 달리기는 갈색 지방을 연소시켜 다이어트에 좋다. 일단 찬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기초 대사량이 증가해 감량이 되는데 거기다가 달리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체중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그만이다. 겨울 달리기는 Winter Blues라고 부르는 겨울 우울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대니얼 스미스(Daniel Smith) 박사 연구팀에 의하면 '계절성 정서 장애(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가 가장 많이 관찰되는 계절은 겨울로, 기온이 낮아지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감소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하지만 달리기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다시 촉진시키고,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나 엔도르핀(Endorphins)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신경물질이 활발히 분비돼 우울증을 막을 수 있다.

 

겨울에 달리기 훈련에 가장 주의할 점은 당연히 체온 유지다. 모자, 목도리, 버프, 장갑 무엇이든 추위를 막는 의류는 반드시 준비한다. 두꺼운 옷을 입고 달리면 쉽게 많은 땀이 나는데 갑자기 식으면서 체온이 떨어지거나 심하면 저체온증을 우발하기도 한다. 두꺼운 옷 한 벌보다는 얇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고, 체온 변화에 따라 벗거나 입어 가면서 온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 반팔을 입고, 긴팔 타이즈를 입고, 바람막이와 경량 패딩을 입는다. 훈련 후에는 즉시 옷을 갈아입고 두꺼운 잠바로 체온을 유지한다. 겨울에는 유난히 손발이 차면 보온 양말을 두 겹으로 신고, 일반 장갑과 손 모아 장갑 두 개를 끼면 추위를 막을 수 있다. 발이 많이 시리면 근육 테이핑 테이프를 신발 앞면에 붙여 바람을 막아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겨울철에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달리는 것은 가급적 자제한다. 거기다가 그 시간에 혼자 달리는 것은 절대 금지다. 보통 직장인들은 오후 7시 정도에 훈련을 시작해서 9시에 끝내는데 여럿이 모여 달리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 낮을 제외한 시간에 혼자 달리기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달릴 때 눈이 아픈 증상, 가슴이 당기고 아픈 증상, 머리에 두통이 발생하는 증상, 심한 손발 저림 증상 등이 나타날 경우는 즉시 운동을 중지하고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혼자 달려서 좋은 것이 없다. 겨울 장거리 훈련에 먼 거리를 달려와서 잠깐 쉬었는데 체온이 떨어진 경우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 혼자 달리지 않아야 한다. 겨울에 장거리를 달릴 경우는 짧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코스를 달리는 훈련을 추천한다.

 

사람은 모두가 가치 판단, 기준, 생각, 재능과 상황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맡은 일을 야무지게 잘해서 비서, 참모, 액션 맨으로 재능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일을 만들고, 기획하고 분담하고, 그룹을 조정하는 리더 역할을 잘한다. 리더는 참모와 일꾼의 단계를 실제로 밟은 사람이다. 그 단계를 건너뛴 사람은 따로 후계자 교육이란 것을 받는다. 일을 반듯하게 잘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형편없이 못하는 경우가 있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리더에서 일터로 돌아오면 현장에서 거의 완전무결한 리더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현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잘 달리고, 사교적이고, 유머 있고, 배려하는 러너가 리더가 되니 한없이 움츠리고 초조하고 긴장해서 무슨 일도 잘 되지 않는다. 그릇 문제가 아니라 시야가 좁은 건지 그릇이 작은 건지 작은 일에 다툼도 잦고, 함께 일하는 임원이나 동료들 힘을 빼는 일이 많았다. 단순하고 즉흥적인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는 모습이라서 평소 지낼 때 아무리 유머가 있고 애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위나 상황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말은 그의 본심과 성향은 아니다. 

 

12월 3일. 토요 정모 불참.

 

大望의 12월 첫 주는 엄마 아빠를 돌보는 당번이 남자라서 청주에 간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갔다가 오후에는 청주에 가고 저녁에는 대학교 민주 동문회 송년회에 간다. 청춘은 이미 지나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 청춘이 화려했든, 숨죽여 지냈든 이미 지나갔다. 한 주 전에는 청주의 다른 학교 민주 동문회 행사가 있었다. 궁금했다. 일어 일문학과 그 여자가 나왔는지. 여하튼 그래서 익숙한 토요일 오전에 가지 않고 금요일 오후에 갈 예정이다. 20살 때 청춘은 전갈처럼 위험하고 노을처럼 아름다웠다. '민주 동문회'처럼 고리타분한 명칭을 사용하는 데는 많다. 모임에 나가면 회원 전부가 70년대 학번부터 92? 아니면 95학번? 정도의 중 늙은이들이 모인다. 

 

가끔은 만약 20 스무 살 때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만 부질없다. 결론은 정해졌다. 그냥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지만 민주화 운동을 한 것과 지금 상황들, 출세하지 못한 것, 부를 이루지 못한 것,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비행기 조종사가 못 된 것, 포클레인 지게차 버스 중장비 기사가 아닌 것, 큰 배를 몰지 못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 삶은 이전의 상황이 미래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주지 못한다. 조금도... 단 하루도. 단 한 시간, 단 일 분, 단 몇 초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안 준다. 절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꼭 기억하라.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살아온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결정한다. 명심해라!

 

속 좁은 사람들은 남에 대해 떠들어 댄다. 험담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을 이야기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생각을 나눈다.

 

12월 6일 화요일 훈련 참석 못함. 

 

정모는 2번 남았고 마지막 행사는 17일 열리는 총회와 송년회다. 지긋지긋하고 넌더리 나는 일들이 끝난다. 달리면서 받았던 친절과 성장, 즐거운 대가를 모두 치렀다. 이젠 마음대로 해도 된다. 늦든, 정모에 빠지든 상관없다. 매번 정기모임 당번을 찾아 헤멜 일도 없고, 테이블과 돗자리 준비도 하지 않아도 된다. 

 

어드벤처 디자인 수업이 점점 끝나가면서 일이  많다.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 20일이고 그 안에 아이들과 함께 작품 제작 과정을 끝내야 한다. 과목이 하나가 늘어도 일은 크게 늘지 않아야 하는데 미숙하게도 일도 두 배가 되었다. 이러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훈련일에 연연하지 말고 자유자재로 훈련한다. 매일 운동하는 것을 어기지 말고, 반드시 지키려는 결심과 행동이 중요하다. 

 

12월 8일 목요일 관문 체육공원 훈련. 조깅 8회전, 100m 질주 4회 후 본 훈련 5km 가속주

 

올해의 마지막 보름달을 보며 달린다. 차갑고 메마르고 단단한 공기가 러너의 몸에 산산이 부서진다. 5km를 22분 50초로 달렸다. 이 시간을 1km를 달리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pace는 4분 34초가 된다. 만약 4분 34초 페이스로 42.195km 전 구간을 달리면 풀 코스 기록은 3시간 12분이 된다. 지금 실력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기록이다. 

 

운동장의 400미터 트랙의 바닥은 붉은색으로 선명하고, 트랙 안에 있는 축구장은 진한 초록색과 밝은 녹색이 섞여 보인다. 축구장을 비추는 서치라이트의 빛은 트랙을 달리는 러너를 확실하게 비춘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이라서 긴 타이즈와 긴 팔, 바람막이와 장갑, 따뜻한 털모자를 쓴 러너들은 옹기종기 모여 조깅을 시작한다.  

 

12월 10일 토요일 훈련.

 

어영부영 준비운동을 하고 관문 운동장을 지나 과천 중앙공원까지 달렸다. 지난 것은 이미 흘러간 것이라 아까울 것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라서 오직 간직할 뿐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우리가 얼마든지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니 집중하고 충실하게 살면 된다. 한 권의 책을 읽어 마음과 몸으로 익히기 전까지는 다른 책을 읽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한 가지 훈련을 몸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도 배우지도 말자고 생각한다. 

 

잠깐 달렸을 뿐인데 마치 어제 일 같고, 페이스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데 잠깐 집중했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다. 마음은 늘 무엇인가 만들고 허물고, 생성하고 소멸하고,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아주아주 짧은 찰나도 용납하지 않는 우주와 같다. 

 

 

수업으로, 눈이 이미 내려서 화요일, 목요일 훈련 빠짐.

 

12월 17일. 영하 10도, 눈 속을 달리다. 영동 1교, 관문 체육공원 왕복 10.8km 1시간 6분, pace 6분 8초

밤 사이 눈이 내렸고, 아침 8시에 나갔는데 싸라기눈이 내린다. 그럼에도 빠지지 않는 동료들과 관문 운동장까지 눈길을 달렸다. 양재천 건너편으로 JJ 러닝 클럽 회원 몇 명이 한강 합수부까지 달려간다. 눈이 쌓인 주로는 속도를 낼 수 없다.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있다. 인생이 괴로운지 늘 장거리를 달리는데 열심인 수자와 현자 순자와 관문 운동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식자 선배를 만났다. 형수님이 정기모임에 나오시고 나서는 좀 뜸하다. 여하튼 언제나 우리에게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포기하게 만드는 불가피한 상황도 일어난다. 용기는 두려움을 이기는 게 아니라 두렵고 힘들어도 하는 게 용기다.

 

동호회 송년회와 24차 정기총회가 열린다. 이전 운영진에서 2년 간 운영진을 맡아 순자 선배와 일했고, 또 2년 동안 사무국장 일을 맡았다. 중간에 팬데믹이 있어 행사가 열리지 않을 때도 모임은 잘 유지돼야 하므로 신경 쓸 일도 많았다. 열심히 했고 고생 많았다. 늘 말하지만 일을 너무 잘해서 문제다. 어떤 행사를 하든지 성실하고 단정한 태도로 일을 하고 끝까지 한눈팔지 않고 마무리를 잘했다. 토요일 정모에는 항상 테이블과 돗자리를 챙기고 간혹 담당자가 부재일 경우 책임을 지는 한이 있어도 자리를 비우지는 않았다. 행사가 열리기 한참 전부터 행사를 준비했고 흐름에 잘 따랐다. 오늘 새로운 운영진을 뽑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면 모든 일은 끝난다. 더 이상 관심 갖거나 무얼 준비하느라 서로 다투고 주장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니 너무나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이제 중요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드니 가볍고도 가볍다. 친한 사람들과 소원해지기도 하고, 남모르게 속으로 고생한 사람의 마음도 알게 됐다. 모든 것은 지나게 마련이고 또 그만큼 성장한다. 혹시 몰라 현자와 종자를 비롯해 함께 고생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역시나 함께 한 팀으로 다시 일할 날은 없었으면 좋겠다. 

 

"12대 운영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훌륭하신 회장 부회장 감독님 회계님 모시고 단합하여 모든 행사 잘 진행하였고, 즐겁게 달렸습니다. 장규석 부총무가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쉽습니다. 제가 싫은 소리 하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현자 회장이 마음고생하였고, 종자 형님에게도 카탈스럽게 굴어 많이 섭섭하신 점 죄송합니다. 친한 사람끼리 방 같이 쓰고 자취하면 멀어지는 데 이젠 모두 내려놓았으니 다시 친해지는 일만 남아서 아주 좋습니다. 2년 동안 운영진 모두 합심해서 서로 도와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여러 크고 작은 행사마다 도움 주신 운영진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임원 자리에서 실업자 된 사람끼리 송년회 한 번 더 합시다."

 

12월 24일 토요정모 영동 1교 관문 체육공원 왕복, -14도 바람은 없고 맑음. 12.8km 1시간 12분 pace 5분 38초

 

월요일, 화요일 어드벤처 디자인 작품 콘테스트를 마지막으로 수업이 끝났다. 2학기부터 어드벤처 디자인 수업 두 개 학과를 맡아서 제법 바빴다. 수요일부터 3일간 여수 유탑마리나 워크솝에 다녀오니 요번 주도 주중 훈련을 못했다. 하지 못한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인생에는 계속 핑계만 한 트럭 쌓여간다. 그러다 보면 죽을 때는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니 모든 게 얼어붙었다. 쨍한 날씨에 찬 공기를 가르고 나아갈 땐 호숫가 얼음이 속에서 금이 가는 듯 챙챙 소리가 난다. 한 겨울에는 무엇보다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보온에 실패하면 달리기는 망한 거다. 양말도 두 개 신고, 장갑을 두 개 끼고, 버프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바람막이를 입어 찬 바람을 막는다. 신발을 근육 테이프로 감아 발이 덜 시리게 한다. 관문 운동장으로 가는 6km 거리는 두 줄로 발을 맞춰 6분 30초 페이스로 천천히 달린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았으니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서초 호반 서밋 아파트 옆에 과천시와 서초구의 경계지점이 있다. 거기까지 서울 쪽으로는 눈이 많이 녹아 달리기 편한데 과천 쪽으로는 길이 곳곳이 얼었다. 마른 길을 골라 한 줄로 달린다. 6킬로미터를 달려서 체육공원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춥다. 출발한 원점으로 돌아갈 때는 5분 10초 페이스로 바르게 달리고, 남은 2km를 4분 45초 정도로 달린다. 짧은 거리라서 힘껏 달리면 그 정도는 무리 없다. 올 때 가슴이 약간 옥죄는 느낌이 들었는데 추워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약간 천천히 달리니 괜찮다. 겨울에는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달리는 일과 아침저녁에 동료 없이 혼자 달리는 훈련도 삼가야 한다.

 

요즘은 추위에 예민해지고 땀도 많이 나지 않는다. 늘 겨울에는 손과 발이 유난히 차서 고생을 한다. 그렇다고 남자가 약한 부분이 손과 발은 아닐 텐데 말이다. 지금은 한 여름의 싱글렛, 포니테일, 우중주가 그리운 것처럼 내년 여름이 오면 눈오리, 눈길 달리기, 털모자와 장갑이 그리울 것이다. 지나간 것은 늘 그립다. 그래서 생각은 줄이고 지나간 것은 재빨리 비우라고 말한다. 

 

12월 27일 화요일 훈련. 영하 2도

 

저번 주 초에 이 삼 일간 내린 눈이 주말에 트랙과 운동장을 하얗게 덮고 있었는데 오늘은 말끔히 말랐다. 인조 구장에선 축구 시합도 하고,  붉은 육상 트랙엔 내년 동아마라톤을 대비해 여러 팀이 나와 훈련하고 있다. 오늘도 역시 순자 선배와 나만 나오고 과천 팀은 추워서 그런지 적게 나왔다. 조깅을 하는 중에 영동 1교에서 달려온 수자가 운동장에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르겠지만 잠깐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고 또 혼자 달린다. 토요일도 훈련하기 전에 30km를 달리고 와서 왕복 훈련 13km를 달린다. 어떤 사람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행복한데 또 어떤 사람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불행한 마음이 든다. 농담처럼 왜 달리냐고 묻는 사람에게 "괴로우니까 달리지, 행복하면 달리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수자는 딱 그 모습으로 죽자 사자 달린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을까? 하고 묻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월요일부터 사무실이 제3 공학관 116호에서 1 과학 기술관 113호로 이사한다. 화요일은 코엑스에서 회의가 있고, 수요일은 출장이 배재대학교 회의가 있어 출장을 간다. 삶에서 주도권이 없으면 늘 휘둘린다. 학교 내에서 이동하는 이사라 해도 개인 짐이며 가구며 책상, 컴퓨터, 살림들까지 전부 옮겨야 해서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옮긴다. 3일은 걸릴 것이다. 코엑스에서 CO-WEEK 아카데미 행사가 있고, 오늘은 회의가 잡혀 있어서 오후에 다녀왔다. CO-WEEK ACADEMY란,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사업이 1년에 1번 현실에 나타나는 POP-UP 캠퍼스를 실제로 운영하는 행사다. 8개 컨소시엄과 산업교육센터에서 주관하는 강의 및 명사 강연 등 다양한 강의와 이벤트를 진행한다. 참고로 혁신 공유대학 사업의 8개 컨소시엄은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실감미디어, 지능형 로봇, 에너지산업, 인공지능, 빅데이터, 차세대반도체가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을 가지려면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해야 한다. 무엇인가 채우려면 끝까지 비워야 한다. 멈추면 모든 게 끝이다. 방대한 스펙트럼의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서서히 하나의 항목으로 굳어지는 것도 모자라 나이를 먹어갈수록 관점은 점점 더 편협하게 제한되어 가고, 제약도 많아지고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친 사람이 되어 버리며 늙고 죽는 거, 그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인생의 많은 우여곡절을 지나서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 중에 어쩌다 보니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럼 이제 끝인 걸까?

 

달리고 안 달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망한 거고, 태어나자마자 내리막인 삶에 두려운 게 무엇이 있을까? 애초에 가진 것도 없었는데 잃을 게 무언가? 

 

"넌 얼마나 강하니?" 

 

"아주 강하지"

 

"얼마나 강하다고?" 

 

"아주 강하다고!"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옛날 분들이 말씀하셨다. 잊을 것은 잊어야 하고, 지난 것은 지난 것이다. 보여줘야 해결될 것은 보여주어야 한다. 상상은 의미가 없다.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상상했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12월 31일 토요일 정기모임. 2022년 마지막 달리기. 13.4km, 1시간 16분, pace 5분 40초

 

우리 시선이 가는 것이 인생에서 점점 크게 된다. 가장 오래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만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남자는 그랬다. 상상한 것들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달리기에 충분한 나이다. 약해지는 감정은 훈련을 안 했다는 뜻이고 단지 그런 기분에 불과하다. 아직 달리기에 충분히 젊다는 것은 주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직 나보다 선배인 사람이 많고, 주로를 달리다 보면 무리 지어 달리는 나이 많은 러너들이 많은 것이 증거다. 오히려 산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까 자기가 점점 늙어간다고 생각한다.

 

내년 달리기 목표를 330으로 잡는다. 새로 감독을 맡은 룡자가 누구는 서브 4를 해야 하고 나에게는 330 달성하도록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앞서 달리던 순자 선배가 말했다.

 

"아직 내 기록 못 따라왔지?"

"3시간 34분 이던가?"

"3시간 33분이거든? 기록 한 번 내야 하지 않겠어?"

 

순자 선배 기록은 3시간 33분이다. 아직 나의 기록은 3시간 46분에 머물렀다. 오히려 4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 최근 기록이다. 이렇게 달리기가 끝나지는 않아야 하는데, 난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얼마든지 가능한데, 그곳에 이르는 메마르고 건조한 여정이 눈에 훤히 보인다. 그 길은 힘들고, 지킬 것들을 전부 지키고, 삶에서 많은 부분을 덜어내야 도착할 수 있다. 

 

"시간은 지우개야"

 

"잊어야 할 것은 잊어" 

 

"나는 천사를 믿어"

 

주위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덜 관심 갖고, 더 많은 글을 쓰기로 한다. 조금 덜 읽고, 덜 느끼고, 덜 생각하기로 한다. 신경 쓸 게 많다면 정작 꼭 필요한 곳에는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시간, 돈, 인생, 삶, 세월 등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같은 것이다. 각 단어의 의미가 같고 그 안에 들어있는 깨달음이 같다. 하나라도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균형이 깨져버린다.   

 

 

전부 아니 에르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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